성을 쌓은 사람에게는 좋은 인연이 필요하다
50대에, 지방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성을 쌓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성공한 사람들이다. 성공을 통해 이룩한 부로 자신이 꿈꾸었던 성을 쌓는다. 그 성은 거대한 한옥단지일 수도 있고 넓은 식물원일 수도 있다.
‘명품 한국 기행’과 ‘명품 한국 스테이’를 구축하기 위해 지방을 다니면서 많이 뵙게 되는 분들이, 이런 성을 쌓는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느낌은, 한마디로 안타깝다는 것이다.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런 분이 계셨다. 고래등같은 한옥 단지를 만들었다. 대들보의 크기가 남달랐다. 나무도 좋은 것을 썼다. 궁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긴 회랑도 지었다.
그런데 솟을대문이 세 개였다. 왜 세 개냐고 여쭈니, 처음에 만들었던 곳이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아서 하나 더 만들었다가, 이쪽에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하나 더 만들었다고.
그분의 인척이 한옥 단지 관리를 했는데 예약이 잘 되지 않았다. 전화를 잘 안 받았고 받으면 핑계를 대고 끊었다. 겨우겨우 힘들게 예약할 수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는 게 있었는데 숙소에 사람이 있으면 귀찮아지니 안 받는 것 같았다.
손님이 별로 안 오니 건물주는 자신이 한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당 냉장고에 식자재가 가득했다. 멋진 사랑채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랬는지 아예 술도가로 만들어서 방과 대청에 술독을 넣어 놓았다.
그 와중에도 성을 새로 쌓았다. 이미 조성된 공간에서도 코드가 엉켰는데 열심히 부속 건물을 또 짓고 있었다. 목적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 건물 밑에는 군에서는 이곳을 돕겠다며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생뚱맞은 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대역사를 꿈꾸며 성을 쌓았는데 초가삼간 채울 콘텐츠도 없는 경우를 왕왕 본다. 이런 콘텐츠의 빈곤은 관계의 빈곤에서 온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 얘기만 듣고 스스로의 성공 신화에 취해 포장지만 그럴싸한 것을 만들곤 한다.
이분을 위한 변명은 얼마든지 있다. 일 하느라 바빠서 취향을 가꿀 시간이 없었다. 하필 잘못된 과외 선생을 들여 사치스러운 촌스러움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자신의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향하는 통로만 열어주었다면 멋진 신세계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자아의 한계가 그를 성 안에 가두었다.
반면 인연을 쌓는 사람도 본다. 스스로 ‘국민이장’이라고 자부하는 해남 남창리 이장님이 그렇다. 국회의원도 5선이면 국회의장을 하는데 5선 이장님이신 이분을 그렇게 못 불러드릴 이유가 없다.
그의 하루는 새벽에 시작한다. 새벽기도를 가는 동네 어르신들을 교회에 모셔다 드리기 위해서다. 이것을 시작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마을 일에 투여한다. 군에서 주는 이장 수당은 한 달에 20만 원, 돈을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이장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이장이면 당연히 내야 할 경조사비를 내느라, 집을 담보로 맡기고 빚을 내었다. 빚을 못 갚아 은행에서 집을 뺏어가려고 하면 자신이 했던 일을 조목조목 말하고 따지겠다고 한다.
이렇게 인연을 쌓는 사람들을 보는 심정도 안타깝다. 하나같이 상황들이 좋지 않다. 그들이 그런 지경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나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성을 쌓는 사람과도 인연을 쌓아야 하고 인연을 쌓은 사람이 성을 쌓는 것도 도와야 하는데, 내 앞의 숙제도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