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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pr 14. 2021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형용사와 부사의 세계'에서 자란 시골 소년의 도시 탐험기

     


시골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는 십리길(4km), 중학교는 이십리길(8km)이었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다녔고 중학교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좀 멀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서울로 전학을 왔다. ‘촌스럽다’라는 것을 내 몸을 보고 느끼며 사춘기를 보냈다. 대학에 와서 다시 '시골아이들'과 조우할 때까지 서울아이들과의 '다름'에 부대꼈다.   

  

서울아이들을 보고서야 내가 살았던 세상이 '형용사와 부사의 세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게 붙박이였고 다만 계절에 따라 변화할 따름이었다. 사물의 종류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가 바뀔 뿐이었다.  

    

이상이 말하는 '권태'를 몸으로 실감하며 살았다. 만날 보는 산, 만날 보는 논과 밭, 만날 보는 풀과 나무... 그런 것들의 변화는 형용사와 부사로 묘사가 충분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멍때리기’는 취향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초등학교 때 반 아이들 중 한 명만 빼고 부모님 직업이 농업이었다. 그 한 명은 아버지가 엿장수였다. 우리는 서로 더 못할 것도 없었고 더 나을 것도 없었다. 입으면 옷이고, 신으면 신발인 줄 알고 살았다.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서울은 달랐다.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였다. 옷이 새 것이냐 헌 것이냐가 아니라 어디 옷이냐가 중요했다. 신발이 편하냐 안 편하냐가 아니라 어디 신발이냐가 먼저였다. 수많은 명사의 깃발이 나부꼈고 그중 몇은 대명사의 반열에 올랐다.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는 끝없이 진화했다. 헌트냐 브렌타노냐 다퉜던 것은, 캘빈클라인이냐 게스냐를 거쳐, 폴스미스냐 휴고보스냐로... 그나마 남자라서 편했다. 여성의 세계에서 명사들의 위세는 더 절대적이었다.  

   

루이뷔통 프라다 에르메스 샤넬... 이것은 명사이면서 대명사였고 수많은 형용사와 부사를 거느렸다. 그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는 단순히 의식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취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에 도통 빠져들지 못했고, 그것은 그 명사를 외우지 못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명사와 대명사에 대한 콤플렉스가 나를 제너럴리스트로 밀었던 것 같다. 하나를 파고드는데 부적합한 히스토리를 가진 나에게 적합한 방식은, 두루 거치며 넓게 경험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여기에 만족하고 있다. 세상에 절대적인 명사와 대명사는 없다. 감상은 오직 나와 그것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형성된다는 것이, 나의 검증된 소신이다.     


나는 아직도 문화예술의 감상을 그 현장, 그 순간의 형용사와 부사의 기억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나에게 다시 오지 않는 그때 그곳의 감정이지, 그 이름이 절대성을 갖는다고 보지 않는다.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보람은... 각 장르의 관계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감상하는 것의 좌표를 나름 찍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형용사와 부사의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명사와 대명사는... 말하자면 문화예술품의 포장지와 같은 것이라고, 그 포장지를 모으지 말자고. 알맹이를 취하자고 생각했었는데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형용사와 부사의 세계’는 마케팅이다. 더 낫고 더 좋다고 말한다.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는 브랜딩이다. 그냥 이것이 찐이라고 압도한다. 사람들은 판단하기보다 압도당하기를 더 좋아한다. 결국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가 이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진안/장수/남원/평창/정선 답사를 다녀왔다. 다시 ‘형용사와 부사의 세계’에 돌아간 셈이다. 그런데 그 지역의 여행을 가치 있고 격조 있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에 통용되는 문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감독의 이름으로 여행의 영역에서 대명사가 될 필요도 있고.      


코로나19 집합금지로 인해 여행불가 시대를 살고 있다. 마케팅은 의미가 없는 시기라 브랜딩을 해야 한다. ‘명사와 대명사의 세계’에서 우뚝 서야 하는 셈이다. 시간이 나를 증명해줄 것이라고 보지만, 그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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