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Jun 12. 2021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의 해독법

'남에게 이해받아야 한다'는 의식에서 관계의 폭력이 시작된다

   


사람이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얻으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어린아이가 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이해받는 존재가 된다. 혹은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된다.      


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려 하니까. 그래서 이해받는 것에 익숙해진 그들은 세상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인격이 모자란 몇몇은,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주변인에게 모욕을 가하기도 한다. '내가 이 정도 자리에 올라왔으면, 좀 이해받아야 하지 않겠니?' 하는 태도로 관계의 폭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갑질로 이슈가 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해명 인터뷰를 보면 지극히 어려진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을 이해해주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온실에서 살다가 거친 광야에 내동댕이쳐진 그들은 차가운 여론의 질타를 이해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들이 불온한 외부세력에 현혹되어 자신을 손가락질한다고 치부한다.      


갑질은 일종의 사회적 퇴행 증후군이다. 성취의 부작용으로 '어른이'가 된 것이다. 어른은 다르다. 이해받는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는 어른이 될 기회를 박탈한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 이 네 가지는 인간관계의 독이 되기 십상이다. 독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독이다. 그래서 이 네 가지 중 하나를 가진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젠가 독에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독은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는 점이다. 비록 ‘독이 든 성배’지만 이들을 만나는 일은 우쭐하고 만나고 나면 뭔가 영양가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은 포만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가까워지면 왠지 피곤해진다. 이들의 자기 중심성 때문이다. 은연중에 자신에게 맞춰줄 것을 기대/강요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도 이 사람에게 맞춰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된 배려에 권리인 줄 알고 이걸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배려는 ‘권리’이기 때문에 고마움을 모른다. 그리고 반상의 구분이 명확하다.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과 자신이 배려해야 할 사람으로. 간혹 이 ‘권리’가 충족되지 않으면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다. ‘분 바른 사람에게 정 주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넷 다 두루 해당하는 것 같다. 



돌이켜보니 이 네 가지를 가진 사람 중에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셀프 해독이 된 사람들이다.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그래야 건전한 관계가 형성된다.      


어른의 여행 클럽/트래블러스랩을 구축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여행을 통한 인연 공유’를 도모하지만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가진 사람이 오면 반갑기보다 긴장된다. 나와 일대 일의 관계일 때는 나 혼자 감당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독에 중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이 ‘뺄셈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콘셉트를 정돈하고 스케줄을 뺄수록 좋은 여행이 된다. 생각보다 여행의 하루는 길지 않다. 더하면 더할수록 음미하지 못하고 뺄수록 집중해서 더 임팩트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스케줄을 짤 때 빼내기가 쉽지는 않다).      


여행 멤버를 짜는 것을 여행 코스를 짜는 것보다 더 중하게 여기기에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가진 사람을 초대할 때 조심스럽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작용하는지 그가 그룹의 원심력을 쉽게 받아들이는 지를 본다. 나의 여행은 ‘원 맨’이 아니라 ‘원 팀’을 위한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모임의 방향성이다. 평범한 사람이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여행자 그룹을 만들려고 한다면 거기 맞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내가 도모하는 바는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가진 사람이 가진 것을 내려놓게 평범하게 어울릴 수 있는 여행자클럽이다.      


나는 ‘어른의 여행 클럽/트래블러스랩’의 중요한 아이덴티티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도 ‘투자’를 하면서 만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적은 사람에게는 그런 투자는 부질없다. 여행은 찰나다. 서로 괜찮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작은 배려를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켜보기 안쓰러운 중년의 삽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