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 언론인들과 해고 노동자를 함께 찾아갔던 여행(2013년)
3주 동안 기자 5명이 전국을 걸어서 돌며 잊혀가는 이슈의 현장을 찾아 취재했다. 하루에 20㎞ 남짓씩 대략 400㎞를 걸었다.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진주의료원 노조원,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의 주민들을 만나고 함안보와 이포보 등 4대강 사업 현장도 훑었다.
그러나 이들이 취재한 내용은 하나도 보도되지 못했다. 그들은 해직 기자이기 때문이었다.
‘YTN 공정방송 국토순례단’(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도보 취재에 나선 이들은 노종면·조승호·정유신·권석재·우장균 등 5명의 해직 기자였다(함께 해직된 현덕수 기자는 해외에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이들이 찾은 곳은 ‘언론이 왜곡하고 외면한 주요 사건의 현장’들이었다. 기자직을 정지당한 이들이 기자정신이 정지한 곳을 찾는다는 취지였다. 취재한 내용은 YTN 노동조합 홈페이지(www.ytnmania.com)에 매일 올렸다.
2013년 6월18일, 순례단은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며 송전탑에서 245일째 농성 중인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 최병승·천의봉 씨를 찾았다. 행군 여드레째였다. 울산 시내에 있는 신북로터리에서 태화강을 따라 송전탑이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까지 가는 길은 13㎞였다. 흐린 날씨에 부슬비가 내려 걷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인지 순례단은 시속 5㎞,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송전탑까지 걸었다.
순례단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쉬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노종면 기자는 순례단과 참가자들에게 최근에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 2명이 자살했다는 것과 이런 내용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그들의 소식 역시 보도를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도되지도 못할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동료 언론인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 믿고, 우리를 통해서 이런 현장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허언이 아니었다. 이날의 행군에는 서울에서 EBS 김진혁 PD(현 한예종 교수) 등 5명이, 울산에서는 배윤호 울산MBC 노조위원장 등 언론인 3명이 동참했다. 이날 울산MBC 〈뉴스데스크〉에 순례단이 송전탑 노동자들을 만난 사실이 보도되었다. 행군에 동참한 언론노조 MBC본부 박대용 조직국장(현 RTV 이사장)은 “MBC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울산MBC는 〈PD수첩〉 최승호 PD를 내쫓는 데 한몫을 한 윤길용 사장이 있는 곳이다”라고 놀라워했다.
이날 울산MBC 뉴스를 가장 안타깝게 바라본 사람은 하루 휴가를 내고 행군에 동참한 YTN 장아영 기자였다. 회사 선배들이 ‘공정방송’을 외치며 전국을 순회하는데, 정작 YTN 뉴스에서는 이들의 소식이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YTN은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하글을 2만 건이나 작성했다’는 특종을 처음 보도하고도 돌연 방송을 중단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래 매년 여름 태풍처럼 언론 탄압이 언론계를 덮쳤다. YTN 사태를 시작으로 정연주 사장을 해임한 KBS 사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탄압이 가해진 MBC 사태, 그리고 〈연합뉴스〉와 〈국민일보〉의 파업 사태. 상황이 종료되면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처럼 해고와 대량 징계라는 상처가 남았다.
해직 언론인과 해직 노동자의 만남은 30m의 간격을 두고 이뤄졌다. 송전탑 중간에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쳐 외치기도 하고 전화 통화도 하면서 해고 노동자와 해고 언론인이 소통했다. 최병승·천의봉 씨는 2010년 해고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복직 판결을 받았는데도 회사가 복직 대신 재입사를 요구하자 이것이 부당하다며 송전탑에 올랐다. 이들을 만난 후 순례단의 조승호 기자는 “언론이 노사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차분히 되돌아봐야 한다. 나도 예전에 기사를 쓸 때 노사 양쪽의 의견을 동등하고 정확하게 다뤘는지 많이 반성했다”라고 말했다.
송전탑 아래에서 강성신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강성남 부본부장, 강성용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부위원장 등 ‘강성’ 3총사와 순례단이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도 함께한 간담회에서는 YTN 〈돌발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노종면 기자(현 YTN 기획조정실장)는 〈돌발영상〉을 시작했고 정유신 기자는 폐지 전 마지막까지 연출한 PD였다.
YTN 김종욱 노조위원장이 들려준 〈돌발영상〉 쌍용자동차 편 에피소드는 이랬다. 경찰의 강제 진압 후 경찰서에 끌려간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해고 노동자의 아내가 경찰서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돌발영상〉에 쌍용자동차 편이 나왔는데 해고자들이 경찰에 맞는 장면이었다. 이를 보고 아내가 “아니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팰 수 있나”라고 말하자 경찰 간부가 면회를 취소해버린 것이었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도 복직을 못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모습은 해직 기자 순례단의 모습과도 겹쳤다. 이들은 현재 해직 무효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고도 복직을 못할 수도 있고, 그에 앞서 아예 대법원에서 복직 판결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2011년 4월 서울고등법원은 징계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우장균·정유신·권석재 기자에 대한 해고는 정당치 않다고 판결했지만 노종면·현덕수·조승호 기자에 대해서는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이후 해직 언론인들은 전원 복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