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05. 2021

북한 여행 청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여행감독의 북한여행 큐레이션 제4편



8000m 이상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완등한 사람은 전 세계에 딱 44명이 있다. 그중 7명이 한국인이다(엄홍길, 박영석, 김재수, 한왕용, 김창호, 김미곤, 김홍빈). 한국은 세계적인 등산 강국이다. 그런데 이런 등산 강국에 북한의 산에 관한 책이 없다. 못 가봤기 때문이다. 북한 쪽 백두대간에 관한 책을 낸 사람은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다. 


북한 관련 여행서도 없다. 북한 방문기를 책으로 낸 사람은 많지만 북한 관광을 개괄적으로 다룬 본격적인 여행서는 없다. 산티아노 순례길 책만 수십 권이 있고 세계 각국의 오지 여행서도 넘쳐나는 나라에서 정작 우리 국토의 반쪽을 다룬 여행서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북한 여행의 실질적인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은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발행하는 <북한 방문 길라잡이>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북한 관련 여행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은 탈북자인데 안타깝게도 그들 역시 북한 여행서를 쓸 수 없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북한은 폐쇄 사회라 북한에 있을 때 두루 여행을 다닌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에게 북한은 ‘돌아갈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여행서는 기본적으로 유혹하는 책이다. 자신이 욕망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유혹하는 것은 어렵다. 


여행 불가 시대에 더 갈 수 없는 북한 여행을 상상해 보다가 덜컥 북한 여행 백서를 쓰고 있다. 북한에 불과 두 번 가본 내가 적임자는 아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행감독의 관점에서 남한 여행자들의 시각에서 북한 여행정보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시작하면 누군가 더 나은 북한 여행서를 쓸 테니, 어깨 힘 빼고 북한여행 기획안을 쓰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북한 여행서를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북한여행 3대 여행사로 꼽히는 곳 중 두 곳의 창업주가 저널리스트 출신이었다. 고려투어는 영국인 닉 보거가 설립했는데 그는 <어떤 나라> <푸른 눈의 평양시민> <천리마 축구단>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등의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했다. 높은 가격대의 소규모 전문가 동반 북한여행을 알선하는 폴리티컬투어는 BBC와 <뉴욕타임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니컬러스 우드가 설립했다(3대 여행사 중 나머지 한 곳은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평양트래블). 


‘이건 내가 할 일이다!’ 기자 출신으로 1호 여행감독을 자처하고 있는 필자가 북한 여행 백서를 쓰는 것은 숙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기약 없는 일이지만, 코로나19가 잦아들면, 혹은 남북관계가 다시 좋아지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 번 이 숙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이 지난한 작업을 위해 북한 관련 여행서를 두루 살펴보고 있는데 보석같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여러 책 중 이 책의 내용이 가장 좋았다. 유쾌하게 풀어나가면서도 ‘북한을 여행한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북한여행을 하기 전에 책을 한 권 추천해 달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뤼디거 프랑크의 <북한 여행>(안인희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을 추천하겠다. 발군이다. 흥미로우면서 통찰적이고, 회의적이면서 희망적이다. 저자의 위트와 통찰력에 기대어 북한 사회를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동독 출신인 저자는 분단과 통일 이후를 경험했으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 체제를 모두 겪어봤다. 1991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에 걸쳐 북한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기존 북한 관련 책이 주로 평양에 머물렀다면, 〈북한 여행〉은 개성을 넘어 중국 국경지대의 백두산과 러시아 국경에 면한 나선 경제특구까지 톺아본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북 구실도 한다. 가져가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필수로 관광해야 하는 지역 등 실용 정보가 담겨 있다.


여행기는 몇 개의 절망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행사 없이는 되는 일이 없다” “서방의 여행자가 자유롭게 여행 프로그램을 구성할 가능성은 없다.” “특별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 소망을 말할 수는 있지만 낙관주의는 최소한도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약속을 받았다 해도 현장에서 아예 이행되지 않거나 변형된 형태로 이행된다. ‘경제여행’을 왔는데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혁명열사능 방문에 너무 놀라지 마시라.”


책을 읽는 동안 북한 사회에 대해 저자와 토론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자 또한 그것을 의도했는지 ‘어떤 한국인도 자기 나라를 더 잘 알기 위해 외국인이 쓴 책을 붙잡을 필요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뜨끔하고 씁쓸하다. 그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저자는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오해와 잘못된 기대를 피하기가 더욱 쉽다”라고 속삭인다. 


북한여행은 끝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약속된 일정은 결혼 전 약속처럼 저 세상 이야기가 된다. 매일매일 일정 조율이 이뤄진다. 매일 반복적인 일정을 수행한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경험의 양이 많고 되새길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된다. 그 복잡한 마음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했다(100% 동의한다). 


 “북한여행은 많은 점에서 절묘한 줄타기이다. 설사 1주일에 지나지 않더라도, 감정적으로 매우 도발적인 경험이다. 한 걸음을 잘못 내디뎠다가는 발밑에 안전한 지반을 잃어버릴 수 있다. 두려움과 호기심, 분노와 공감, 명상증과 신뢰 사이에서 흔들린다. 많은 것을 배우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그 나라 안에 있지만 한 번도 진짜로 거기 있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격리되고, 그런데도 저녁이면 그 모든 대화와 인상 덕분에 죽도록 고단하다. 방문객은 쾌감과 좌절감 사이에서 정서적 롤러코스터를 탄다.” 

매거진의 이전글 옛그림으로 보는 북한의 주요 여행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