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는 느낌’, 당신이 북한에 가게 되면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다. 그것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북한 사람들은 멀리서 온 손님에게 확실한 환대를 보여준다. 남북관계가 어떤 상황이든 당신이 북한에 있는 동안은 환대받는 느낌은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다.
<시-유 어게인 in 평양>을 쓴 미국의 작가 트레비스 제퍼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영 언론이 보통 미국을 향해 내비치는 적대감을 내게 드러낸 북한 사람은 여행하면서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중략) 북한 사람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환대받는다고 느끼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자신들의 국가에 좋은 인상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북한에서의 식사 특히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한 식사는 늘 거했다. 북한의 ‘밥자리의 탈을 쓴 술자리’는 공자와 맹자에서 시작해서 노자와 장자로 끝이 난다. 대략 3부로 구성되는데 1부는 의전이다. 남측과 북측이 서열대로 환영사와 답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공자왈 맹자왈 건배사를 읊는다. 2부는 식사다. 애피타이저와 전식, 주식 그리고 디저트 순서로 나오는데, 절대 다 먹지 못할 만큼 푸짐하게 내준다.
3부는 여흥의 시간이다. 가라오케를 켜고 접대원 동무가 선창을 하면서 여흥을 돋운다. 매의 눈으로 다음 노래를 이어갈만한 사람을 불러내어 분위기를 이어가게 만든다. 중간중간 북측 프로가 끼어들며 분위기를 업시킨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세월아네월아 노자와 장자다. 밥자리의 탈을 쓴 술자리는 그래서 길어진다. 호텔이나 주요 관광지 근처의 대규모 식사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찌읍시다’와 ‘쭉냅시다’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2008년 10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언론인들에게 배운 건배사다. ‘찌읍시다’는 술잔을 가볍게 부딪친다는 뜻이고, ‘쭉냅시다’는 ‘무슨 일의 끝을 본다’는 의미이다. 이 말을 배우고 나서 건배할 때마다 “남과 북이 찌읍시다”와 “통일의 길을 쭉냅시다”를 외쳤다.
더 정확히 살펴보면, ‘찌읍시다’라는 말은 북한말 ‘찧다’가 변형된 것으로, ‘찧다’는 ‘축배를 들 때 잔과 잔을 서로 마주 가져다 가볍게 부딪치다’라는 뜻이다. ‘쭉냅시다’라는 말은 ‘무슨 일의 끝을 보다’는 말로 잔을 부딪칠 때 이 말을 쓰는 것은 ‘술잔을 비우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영어와 우리말을 섞은 괴상한 건배사에 이골이 나 있던 남측 언론인들은 ‘찌읍시다’와 ‘쭉냅시다’에 열광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건배’나 ‘원샷’ 대신 쓰며 즐거워했다
술 외에 북한에서 접하게 되는 또 다른 환대의 언어는 춤이다. 밥자리가 술자리를 거쳐 춤 자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술자리를 춤자리로 변환시키는 주역은 접대원 동무들이다. 노래 후렴구에 흥겹게 어깨춤을 추다가 좌중에서 흥돌이 흥순이를 끌어낸다. 그렇게 한참 군무를 추게 된다. 북한에서는 이렇게 손님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온몸으르 던져서 춤을 추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군중무용이 흔하다. 특징은 차려입고 춤을 춘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을밀대에 올라갈 때 북한 노인들이 잔디밭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있던 북한 간부가 그들에게 가서 뭔가를 지적했는데 내려올 때 보니 곱게 한복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환대의 또 다른 언어는 남다른 입담이다. 북측 관계자들은 의전할 때 영혼 없이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는다. 남다른 입담으로 순간순간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북한에 있는 며칠 동안 혹은 당일치기 관광이라도 입담이 좋은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의 유머는 시원시원하다. 뤼디거 프랑크의 <북한 여행>은 “저 뒤에 저 건물 보이죠? 저게 뭔지 아시나요? 저건 우리의 미사일발사대랍니다”라며 105층 높이의 류경호텔 건물을 소재로 농담을 하는 북한 여성 안내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조심스러운 것은 우리다. 그들은 거침이 없다.
2008년 개성 관광을 갔을 때 간식을 파는 매점 점원에게 슬쩍 농을 건 적이 있다. 물론 패자는 나였다. 본전도 못 건졌다. 대화는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여기 매대에 쿠키 중 무엇이 맛있습니까?”
“오른쪽이 맛있습니다.”
“정말 그게 더 맛있어요? 어떻게 알아요?”
“보십시요, 뭐가 많이 나갔나”
환대의 마지막 언어는 눈치다. 북한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다. 티 내지 않고 슬쩍 배려한다. 2008년 평양에 갔을 때 현지 원칙 중 하나는 이동 중에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행이 대부분 기자들이라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단체버스로 이동 중에도 쉴 새 없이 찍어댔고 우리를 안내하는 북측 관계자는 또 쉴 새 없이 막아댔다. 그런데 막아도막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 관계자는 우리가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자는 척을 했다.
북한에 방문했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눈치는 뜨거운 물수건이었다. 감기 기운이 좀 돌았다. 저녁식사를 위해 양각도호텔 식당에 갔는데 접대원이 차가운 물수건을 나눠 주었다. 감기 기운으로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보더니 물수건을 걷어갔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뜨거운 물수건을 가져다주었다. 호텔 식당을 몇 번 이용해서 얼굴이 익은 접대원이었는데 순간 울컥했다.
사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배려를 기대하기 힘들다. 자본주의화가 어느 정도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고객의 상태를 섬세하게 관찰하는 이런 배려는 서구의 특급 호텔에서도 기대하기 힘들다. 같은 동포이기 때문에 가능한 배려일 텐데 남과 북이 이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안 될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