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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08. 2021

프라다도 인정한 힙스터들의 도시 평양

여행감독의북한여행큐레이션 제15편

'조선관광' 홈페이지의 북한 관광 사진(캡쳐)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어떤 여행지일까? 팝아티스트 강영민 작가는 북한을 ‘힙스터 나라’로 재해석했다. 그의 주장이다. “주체적으로 딴 길을 걸었던 북한이 힙스터들의 최애템(최고로 애정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주류 문화에 거리를 두고 반(反)문화를 즐기는 힙스터들에게 ‘나는 당신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변화하지 않겠다’고 국가적으로 선언한 북한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북한은 힙하다. 럭셔리 브랜드 프라다는 그것을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활용했다. 2003년 뉴욕 소호 거리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라다 안테나숍이었다. 맨해튼을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와 프린스 거리가 만나는 소호의 심장부에 프라다의 안테나숍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소호 분관을 개조한 곳이었다. 프라다 본사는 프라다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프라다의 창의성이 집결된 이 매장은, 그 자체가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 집결체로서 현지 예술가들로부터 웬만한 갤러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2001년 말 완공된 이 안테나숍은 개조 공사와 실내 인테리어에 2천만 달러가 넘게 들었다. 램 쿨하스와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 등 당대 최고 건축가들이 공동 설계하면서 이 매장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에서도 가장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AMO팀은 구매자가 자신의 전신 모습을 다양한 방향에서 감상하고 어울리는 옷을 시뮬레이션으로 고를 수 있도록 최첨단 디지털 장비를 동원했다.     

 

시즌마다 내부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는 이 매장의 인테리어가 내가 방문하기 얼마 전 바뀌었다. 우리에게 무척 낯익은 모습이었다. 바뀐 프라다 매장의 콘셉트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기 때문이다. 매장 내벽에는 북한 여성들의 카드섹션 장면을 찍은 거대한 사진이 벽을 장식하고 있고, 곳곳에 인민군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마네킹들은 사열하는 인민군 사병처럼 도열해 있었다.  


프라다 뉴욕 안테나숍에 사열하듯 열을 맞춰 선 마네킹들

 

프라다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뉴요커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검은색을 바탕으로 한, 평범함 속에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프라다의 미학이 실용적인 뉴요커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프라다 뉴욕 안테나숍의 새로운 인테리어는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프라다의 미니멀리즘과 간결한 메시지의 사회주의 선전선동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반영한다.     

 

프라다는 단지 패션적인 면만을 고려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뉴욕 안테나숍의 주요 콘셉트로 잡았을까?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프라다 제국을 이끌고 있는 미우치아 프라다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내 수공업 수준에 머물렀던 프라다를 세계적인 패션 제국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그녀의 히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이 의문을 풀 수 있다.      

 

정치학 박사 출신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당에 몸 담기도 했던 급진 좌파 성향의 학생이었다. 한때 여성운동에도 투신했던 미우치아는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로 침체 일로이던 가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스물여덟 살이던 1978년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전문 디자이너 수업을 받지 않은 그녀는 ‘콘셉터’로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프라다의 콘셉트를 명확히 했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으면서 실용적이고, 두고두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프라다는 거품 경기가 꺼진 후 실용적인 패션에 눈을 돌리던 여성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뉴욕 안테나숍의 주요 콘셉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설정한 것은, 당시 좌경화하고 있는 뉴요커의 의식을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뉴욕은 9·11 사태 이후 ‘반부시 감정’이 팽배해 있다. 뉴요커들에게 부시 대통령은 ‘이디엇’(멍청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역 특성에 맞게 이미지숍을 만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던 미우치아 프라다가 뉴요커들의 이런 성향을 읽고 부시가 ‘깡패 국가’로 지목한 북한을 매장의 주요 콘셉트로 도입한 것으로 보였다.    

 

언젠가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프라다가 북한 인민군 제복을 디자인해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프라다와 군복은 낯설지만은 않다. 프라다를 세계적 브랜드로 이끌어준 소재인 ‘포코노 나일론’은 미우치아가 버려진 군용 물품 공장에서 찾은 것이었다. 어쩌면 프라다는 이미 인민군 제복을 디자인해보았을 수 있다. 거기서 비롯된 몇 개의 패턴을 옷의 디자인에 응용했을 수 있다. 

 

힙함은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프라다가 군용 물품에서 소재를 찾고 조선민주주의공화국에서 영감을 받았듯이 여행을 디자인할 때도 기존에 있는 것 중에서 절묘한 것을 뽑아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치장하는 능력이 아니라 알아보고 뽑아내는 능력이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공격할 때 그 악의 축에서 콘셉트의 축을 뽑아낸 프라다처럼 말이다. 


 

힙스터들을 위한 평양 여행법을 소개한다. 맨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워싱턴포스트가 ‘평해튼(평양+맨해튼)’으로 소개한 여명거리다. 북한은 금수산태양궁전부터 용흥사거리까지 이어지는 3km 구간에 고층 ‘살림집(아파트)’를 집중 건축했다. 여명거리를 걷는다면 <사랑의 불시착>에 나오는 서단 모녀 같은 여성들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문수물놀이공원도 평양의 힙스터 명소로 유망하다. 이곳의 특징은 ‘올 인클루시브’라는 점이다. 몸만 가면 된다. 10달러만 내면 수영복을 비롯해 비누, 샴푸, 린스, 타월 등을 모두 제공한다. 단순히 수영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 ‘롤러코스터 미끄럼틀’ ‘보트로 물줄기 떠내려가기’ 등 다양한 워터파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개성청년공연’ 역시 워터파크 시설이 갖춰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능수버들이 물결 위에 비단을 풀어놓은 듯하다’는 의미의 고전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능라도와 ‘양쪽으로 뾰족한 양뿔 모양의 섬’이라는 심심한 뜻을 가진 ‘양각도’는 떠오르는 대동강의 명소다. 능라도에는 돌고래쇼장, 놀이공원, 해수 수영장과 수족관 등이 최근 구축되었다. 카지노가 있는 양각도호텔이 양뿔의 한쪽 끝을 담당하고 있는 양각도에는 체육촌, 골프장, 스포츠센터가 있다. 힙스터를 위한 능라도 풀파티와 양각도 록페스티벌은 어떨까? 


평양을 방문하는 힙스터에게 던지고 싶은 미션이 있다. 바로 ‘대동강을 따라 자전거 타고 주체탑 옆을 지나다 관광객에서 사진 찍히기’이다. 이곳은 평양의 대표적인 사진 명소다. 주체탑 옆에서 사진을 찍히면 멀리 인민대학습당과 대동강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찍을 수 있다. 역으로 이 사진에 찍힐 수 있도록 자전거를 탄다면 평양 힙스터 여행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자전거여행이 가능한 곳은 평양 대동강 원산 울림폭포 등이다. 


경흥관 대동강 맥주집은 힙스터들이 방문해야 할 평양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매일 공급되는 대동강맥주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인데 말 그대로 선술집이다. 의자도 없이 서서 간단한 과자류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곳이다. 평범한 평양 시민과 어울려서 생맥주 잔을 들 수 있는 이곳은 맥덕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이다. 


아예 김일성광장에서 대동강맥주로 치맥 파티를 해보면 어떨까? 북한 국가관광총국에서 나에게 평양 관광 개발을 의뢰한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북한은 새해 첫날 김일성광장을 해돋이 관광지로 제공하기도 했다. 참고로 평양에서는 매년 8월 대동강 유람선 등지에서 ‘평양맥주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도모하면 어떨까. 김일성광장 바닥은 사열식 때 줄을 맞추기 위해 온갖 표식이 되어 있다. 맥주 테이블을 줄 맞춰 놓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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