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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09. 2021

크루즈선으로 만끽하는 북한의 바다, 아직은 상상

여행감독의북한여행큐레이션 제16편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고 남북 교류에 관해 다양한 상상력이 발휘되었을 때 그 중심에는 철도가 있었다. 열차를 타고 김정은 위원장처럼 베트남도 갈 수 있고 또 유럽으로도 갈 수 있는 시대가 곧 열린다는 기대감이 ‘유라시아 상상력’으로 이어졌다. 반면 해운을 통한 ‘환동해 상상력’은 그만큼 발휘되지 않았다. 철도로 연결되는 것처럼 동해권이 크루즈로 연결될 수 있는데 말이다.       

    

크루즈로 연결되는 ‘환동해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 보았다. 이미 우리는 금강산관광 때 크루즈 여행을 경험한 바 있다. 그것이 점과 점을 잇는 단편영화였다면 이제 여러 곳을 잇는 장편영화 격의 크루즈 여행을 상상해볼 수 있다. 원산 김책 청진 나진 등 북한의 항구들이 개방되고 여기에 우리의 부산항 동해항 속초항,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항 사할린항, 일본의 니가타항 오타루항이 유기적으로 네트워킹 된다면 발트해 경제권 이상의 환동해 경제권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발트해의 항구도시는 자국의 수출입 화물 위주로 처리하는 항구와 통과화물을 처리하는 항구로 구분된다. 폴란드의 그단스크, 덴마크의 코펜하겐, 스웨덴의 스톡홀름, 핀란드의 헬싱키는 전자다.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의 탈린, 라트비아의 리가,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는 후자다. 중국 동북 3성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후자의 모형을 참고해 ‘환동해 경제권’을 구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변국과 관광산업 연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원산은 크루즈 기항지로도 각광받는다. 세계적인 크루즈 회사들이 한국을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보는 이유는 제주·부산 등 이미 검증된 기항지가 있고, 아시아 크루즈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이 개방을 하지 않아 이가 빠진 상황이었는데 원산항이 열리면 부산-원산-블라디보스토크- 일본으로 이어지는 크루즈 루트가 완성된다.             


환동해 경제권이 살아나면 북한 동해안 도시의 활력이 더해지는 것과 더불어 러시아도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고 북송선이 출발하던 니가타항도 다시 옛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러시아 극동 지역과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모피 무역이 이뤄지던 원시 환동해 교역로도 복원되고 홋카이도 아이누족과 사할린 한국인 동포사회 등 마이너리티 문화도 재조명될 수 있다. 경제사는 물론 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장사정포가 배치되었던 원산 명사십리 해변은 김정은 시대 관광단지로 변화되었다. 

     

자 이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일단 부산은 접경도시다. 우리의 상상력은 이 언명에서 출발한다. 남북 교류 시대에 부산은 유라시아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부산은 서울에서 출발한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의 종착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북한으로, 중국 동북3성으로, 러시아 시베리아로, 그 넘어 유럽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다.      

북한의 동해안에는 명승지가 몰려 있다. 관동팔경 중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가 북한 지역에 있다. 원산의 송도원과 갈마반도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이름난 휴양지였다. 칠보산과 청진 그리고 나진은 평양에서 육상 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도시인데 해운을 통해 수월하게 접근 가능하다.   

 

환동해 크루즈가 운항된다면 북한의 메인 기항지는 원산항이 될 것이다. 원산은 1914년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각광받았는데 명사십리에는 서양 선교사를 위한 해수욕장이, 송도원에는 일반인을 위한 해수욕장이 들어섰다. 근대문학가들도 이곳을 다녀간 뒤 찬사를 보냈다. 소설가 현상윤은 “규모로 보나 욕객의 수로 보나 전 조선을 통하여 제일 되는 해수욕장”이라고 묘사했고, 소설가 김동인은 “물로 첨벙 뛰어들었고, 물은 소리를 치면서 환영했다. 이것은 젊음이라고 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힘이다. 해수욕장은 젊음의 상징이다”라고 찬양했다.      


북한은 원산에 송도원국제휴양소를 설치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받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구상은 더 크다. 원산·갈마지구에 마식령스키장까지 더해서 세계적인 마이스(MICE· 부가가치가 큰 복합 전시 사업) 중심지를 구축하려고 한다. 매년 신년사를 할 때마다 삼지연 지구와 함께 이곳의 공사 진척 상황을 챙기는데 공사가 마무리 국면이다. 자료사진을 보면 김일성이 원산에 오기 위해 만들었던 원산공항과 바다 사이에 조성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아산에서 금강산 관광을 총괄했던 심상진 경기대 교수는 쿠바처럼 북한도 관광이 주력산업으로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관광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여타 산업과 비교하여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북한은 개방 후 관광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북한과 쿠바는 닮은 점이 많다.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는 국가라는 점도 비슷하다. 숙박 인프라가 부실한 북한이 쿠바식 카사를 민박으로 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동해 크루즈를 계기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과거의 바다에 대한 고찰은 이렇게 미래의 바다에 대한 상상력을 줄 수 있다. 선사시대 이래의 북한 바다를 보여주는데, 고구려와 발해의 일본 항로는 앞으로 북한이 개방했을 때 환동해경제권의 물류가 어떻게 이동할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고구려와 발해의 일본 항로는 니가타와 청진을 오가던 북송선 항로와도 대체로 비슷하고, 기항지는 북한이 경제특구로 설정한 나진·선봉지구와도 인접해 있다.  


“우리는 올해에도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거창한 대건설 사업들을 통이 크게 벌여야 합니다. 전당, 전국, 전민이 떨쳐라. 삼지연군을 산간 문화 도시의 표준, 사회주의 이상향으로 훌륭히 변조시키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새로운 관광지구를 비롯한 우리 시대를 대표할 대상 건설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여야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다. 그는 백두산 삼지연지구와 함께 원산갈마지구의 관광 자원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제가 봉쇄된 상황에서 관광으로 외화를 획득하는 쿠바식 모형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엇보다 숙박 인프라 구축에 역점을 두고 있다. 저 시설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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