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쫙쫙
지난 화요일 밤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갑자기 분수처럼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 11시, 두세 번을 토해내더니 이번엔 설사를 쫙쫙하기 시작했다. 얼굴엔 핏기가 없었고, 뭔가 잘못 먹은 게 분명해 보였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엄마로서 걱정이 밀려왔지만, 이상하게도 내 속도 함께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토한 걸 치워서 그런가 싶어 애써 넘기려 했는데, 이번엔 내가 토하기 시작했다.
아이도, 나도 힘이 빠져 있었다.
아이를 간호할 기력조차 없어 결국 아이 옆에 나란히 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그렇게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며 지나갔다
수요일 아침.
밤새 아이는 구토와 설사를 반복했을 텐데, 나는 자느라 그 고생을 다 보지 못했다.
아침에 본 아이의 얼굴은 핼쑥했고, 평소 까불거리던 목소리는 늘어진 가야금 소리처럼 힘이 없었다.
언제나 엄마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작은아이.
그 아이가 그렇게 아프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얼음 녹듯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아이를 걱정할 틈도 없이, 이번엔 내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일어나기만 해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놀이공원에서 탔던 88 열차처럼, 모든 것이 어지럽게 회전했다.
그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문제는 현실이었다.
수요일 저녁은 배달음식점을 운영해야 하는 날이었다. 이미 화요일 휴무로 하루를 쉰 상태라, 연속 휴무는 고객과의 신뢰를 깨는 일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퇴근 후 대신 일하겠다고 나섰다.
고마웠지만, 남편의 건강이 더 걱정됐다. 결국 그날도 아이와 나는 침대에 누운 채 하루를 넘겼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아이의 열은 떨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이 돌았다.
이런 어지럼증은 난생처음이었다. 열보다도 이 ‘빙글거림’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 고통을 이기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먹은 음식으로 인한 심한 장염 같다고 했다.
링거를 맞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쉬지 못했을까.’
한 시간 남짓 링거를 맞고 병원을 나왔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건강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선물이었다는 걸.
그동안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나를 몰아붙였는지.
몸은 잠시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계속 앞으로만 가려했다.
이틀을 꼬박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이와 누워 있어야 했다.
무기력했다.
불과 며칠 전, “더 성장해야지”라며 불을 켜고 움직이던 내 모습이 낯설 정도였다.
집 근처 공원을 잠시 걸었다.
힘없이 걷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분명 아프고, 무기력하고, 우울할 것이다.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그렇게 된다.
힘없고, 병들고, 유약한 존재로.
그런데도 이 사회는 얼마나 잔인한가.
연예인의 과거를 끌어내 비난하고, 조롱하고, 끌어내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모습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이번 일을 겪으며 분명해진 게 있다.
건강은 단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신 건강이 무너지면, 결국 타인에 대한 시선도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작은 선행 하나라도 매일 해보려 한다.
예전의 나는 늘 도움받는 입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베푸는 경험이야말로,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이제야 안다.
사람은 아플 때 비로소 멈춘다.
그리고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두 손엔 아직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공기가 절반도 안 찬 고무공처럼 말랑하다.
그럼에도 생각할 힘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정말 “쉬어도 되는 순간”에 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