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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혹은 여자로서의 삶

아저씨에 대한 기억

by 바이즈

【아저씨】


1.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홍명보 선수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

한 남자가 엄마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에도,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쭈뼛거리는 아저씨에게 함께 게임을 하자고 권한 것은 나였다.


당시 겜보이라는 게임기가 있었다.

형과 나와 아저씨는 함께 올림픽이라는 게임을 했다.


아저씨는 이기면 웃었고, 지면 아쉬워했다.


엄마는 과일을 깎으며, 게임에 빠져있는 세 남자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2.

그 후로 아저씨는 가끔씩 놀러 왔고, 함께 게임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제 안 와?”


엄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3.

당시 엄마는 전통시장 안에서 작은 가게를 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종종 가게에 들렀다.

가게 안에서 꼬맹이 이모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들렸다.


“언니. 그 사람은 총각이고, 난 이혼했고 아이들이 있잖아.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 “


“에고.. 애들도 크면 다 이해할 거야.”


꼬맹이 이모는 나를 발견하고 ‘어서 와’하며 손짓했다.

그리고는 내게 “엄마가 재혼하면 어떨 것 같니?”하며 물었다.


난 “싫다”라고 대답했다.


4.

난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저씨는 오래전 내 기억에서 잊혔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담임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갑자기 나를 불렀다.


“어머님께 연락받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구나. 어서 가봐.”


난 책상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교문으로 나왔다.

교문 앞에는 택시 한 대가 서있었다.


택시 안에는 엄마와 형이 타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택시를 타라고 손짓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가는 길.

룸밀러를 통해 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했고,

수염에도 흰 빛이 드문드문 이었다.


콧 날이 높고, 눈빛이 선한.


‘아저씨’였다.


5.

춘천에서 속초까지 택시는 달렸다.

택시는 속초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엄마가 택시비를 건네려 하자 아저씨는 손사래를 쳤다.


택시 문은 닫히고, 아저씨는 택시와 함께 사라졌다.


난 엄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6.

대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에게 아저씨에 대해 물었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랑 헤어지고, 몇 년 후에 결혼해서 딸 둘을 낳았어.”


내가 물었다.

“왜, 그때 아저씨랑 헤어졌어?”


엄마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네가 싫다고 했잖아.”


7.

엄마는 내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버지가 아닌,

남자로서의 자신을 느끼기 위해 세 번을 바람피우고 세 번을 모두 엄마에게 걸린 사람.


임경선 작가의 '나의 남자'라는 소설을 다 읽고 가만히 당시 어머니 나이를 떠올려 본다.

딱 3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


엄마도 분명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자신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꼬맹이 이모가 같은 질문을 내게 다시 한번 해주길 바라본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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