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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바이즈

1.

대학 전공수업 시간이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记) 중 ‘백이열전’을 공부했다.


'백이열전'은 사기의 서문(序文) 격이다. 이 문장을 통해 사마천은 자신이 사기를 쓴 이유에 대해 밝힌다.


간략히 내용을 정리한다면,


백이와 숙제는 소위 왕의 아들이었다.

(여기서 백은 첫째라는 뜻이고, 숙은 셋째라는 뜻이 있다.)


아버지는 숙제를 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다.”라고 말하고 달아나버린다. 숙제 역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도망간다. 결국 가운데 아들이 왕이 된다.


이 무렵 백이와 숙제는 서백창(주나라 문왕을 말함)이 노인을 잘 모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도착해보니 서백은 죽고 그의 아들 무왕이 나무로 만든 문왕(서백을 추존)의 신주를 싣고 동쪽으로 주나라를 토벌하려 했다.


백이와 숙제는 군대를 막아서서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창칼을 드는 것은 효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군사가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하자, 강태공이 “의로운 분들이다.”라고 말하며 한쪽으로 모시게 한다.


무왕은 결국 은나라를 평정하고 주나라를 세운다.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주나라 곡식은 일절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비를 따서 먹는다. 결국 이 둘은 굶어서 죽는다.


사마천이 말한다.


“하늘의 도는 치우침 없이, 늘 좋은 사람을 돕는다.”라고 했다. 백이와 숙제는 좋은 사람인데, 인덕을 쌓고 착한 행동을 했음에도 굶어 죽었다. 공자는 70여 명의 제자 가운데 유독 ‘안연’을 꼽아 그는 스스로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안연’도 평생 가난 속에 살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끝내 젊은 나이로 죽는다.


'하늘이 착한 사람을 돕는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그와 달리 '도척'이라는 도적이 있었다. 그는 매일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를 쳐서 먹고, 포학한 짓을 멋대로 했다. 또한 수천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저었다. 그럼에도 도척은 천수를 누리고 잘 먹고 잘살았다.


사마천은 ‘이것은 대체 무슨 덕을 따랐다는 것인가?' 라며 탄식한다.


그리고 사마천 스스로 몹시 ‘곤혹스럽다’고 말하고, 다시 한번 묻는다.


"과연 하늘의 도라는 것은 있는 것인가?”


2.

교수님이 말했다.


“얘들아, 사마천이 지금 하늘의 도가 있냐고 묻는다. 사마천 생각에 하늘의 도가 있다는 거냐? 아니면 없다는 거냐?”


전공교실에 갑자기 깊은 침묵이 흘렀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시며 말했다.


“사마천은 하늘의 도가 있다고 말하는 거야.


생각해봐라.


백이와 숙제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알고.


도척이 나쁜 놈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가 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했기 때문에 백이와 숙제는 어질고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도척은 극악무도한 나쁜 놈으로 기억되는 것이란다.


사마천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궁형을 감수한 사람이야.


당시 궁형은 소위 남자의 그곳을 자르는 죽는 것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천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그것을 감수했어.


그것이 자신이 천도를 대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교실에서 짧은 탄식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3.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치욕을 딛고 역사를 기록한 사마천과 같은 마음을 먹은 것일까?


그녀도 또한 ‘하늘의 도’가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4.

마치 모든 세포가 스스로를 파괴할 것처럼.

귓가에 어떤 절규가 들릴 것처럼.

손가락의 피부가 벗겨지고 흰 뼈가 드러난 것처럼.

온 마음이 검은 연기에 휩싸인 것이 당연한 것처럼.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동안 내 온몸이 아렸다.


그러다 문뜩 심연에서 한 마디 외침이 내게 들렸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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