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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Jun 28. 2022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Good!

1.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산은 높았고 야속하게 푸릇푸릇했다.


색동 한복을 입은 무녀의 춤사위가 시작됐다.

그녀가 입으로 내는 소리는 사람 소리인지 아니면 영혼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2.

스물여덟 끝자락.

학자금 대출 상환을 끝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온 어느 봄날.

그간 알바로 모은 돈을 ATM기로 확인했다.


5,000,000원.


무려 500만 원을 모았다. 태어나서 내가 본 가장 큰 금액이었다.


기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속으로 ‘용돈이라도 드려야지’라고 생각했다.


“뭐하세요?”


엄마가 말했다.


“형이 장례식장에 갔다 왔대. 그런데 몸이 너무 아프데. 아무래도 신병이 걸린 것 같아.”


엄마에게 한 참 동안 자초지종을 들었다.

형은 여자 친구 아버지 장례식을 다녀왔다. 그 후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소위 ‘아는 소리’를 했다.

엄마가 무당 친구에게 물으니 신내림을 받을 신이 들린 것이 아니라, 잡귀가 들린 것이라 했다.

정신이 약한 사람은 종종 장례식장에서 잡귀에 들려 병을 앓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부연설명도 있었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엄마가 답했다.

“굿을 해야 한데.”


난 갑자기 웃음이 터졌고 껄껄 거리며 엄마에게 물었다.

“얼만데?”


엄마가 말했다.

“오백”


엄마의 대답에 난 ‘돈 버는 사람 따로, 돈 쓰는 사람 따로’라는 옛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3.

굿할 날짜를 정했다.

무당 아줌마는 굿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일 것을 권했다.


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10년 만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굿 비용’도 이미 준비됐으니 몸만 오시면 된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깊은 침묵이 끝났고, 아버지는 “알겠다.”라고 했다.


내가 “아버지 온다고 하시네”라고 말하자,

엄마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그날 입을 옷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했다.


4.

사방이 산이었다. 넓은 마당이 있는 한옥집 안에는 온갖 과일과 음식들로 가득했다.

엄마는 내게 귓속말로 “무당들이 그저 꽁으로 돈 버는 건 아냐. 준비 많이 했네”라고 했다.


형은 연신 입으로 알 수 없는 말을 뱉으며 방 중앙에 앉았고,

나와 엄마는 두 손바닥을 모으고 한쪽 귀퉁이에 어정쩡하게 앉았다.


그때 색동 한복을 잘 차려입은 무당 아줌마가 나왔다.

그녀가 입으로 내는 소리는 사람 소리인지 아니면 영혼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무당 아줌마의 한풀이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엄마 눈에 눈물이 흐르고, 형 눈에도 눈물이,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오후 무렵 시작된 굿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에 끝났다.


굿이 끝나자 형은 뭔지 모르게 차분해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형이 갑자기 엄마에게 말했다.

“왜 엄마는 동생만 사랑해? 왜 나랑 동생을 차별해?”


엄마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형에게 물었다. 형은 “왜 자신에게만 대학을 가지 못하게 등록금이 없다고 했냐”라고 따졌다.

나는 형에게 “아니야. 내가 대학 합격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도 등록금 내줄 돈 없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형은 “정말?” 이냐고 내게 재차 물었고, 난 “정말”이라고 재차 답했다.

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주섬주섬하는 우리와 엄마를 향해,

무당 아줌마는 ‘형이 3개월 후면 많이 좋아질 이라 말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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