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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Jul 29. 2022

음료캔이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1.

굴뚝새.

찌르레기.

왜가리.

팔메토 야자나무....


그리고,


카야.


2.

6세에 엄마가 떠나고, 이윽고 오빠가 떠나고, 몇 년 후 아버지가 떠난다.


결국 혼자 남은 카야.


어린 소녀.


어린 나.


이야기를 따라 난 카야가 되어버린다.


3.

바다.


백사장이 큰 이모집 근처에 있었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혼. 형과 난 큰 이모집에 얹혀살게 됐다. 사촌 형, 사촌누나들, 형, 나, 그리고 원양어선 선장 이모부, 큰 이모.


4학년 한 달을 빼먹고, 전학 온 학교는 친구들을 사귀기 어려웠다. 어린 나이에도 알게 모르게 있는 텃세를 느꼈고, 난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과 후 형과 사촌 형, 그리고 나 셋이 밖으로 돌아쳤다. 큰 이모부가 바다에 나가 몇 달을 돌아오지 않았고, 큰 이모는 어떤 바쁜 일이 있는지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해변을 따라 뛰고 뒹굴고 조개를 줍기도 하고, 작디작은 게들이 옆으로 달리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샌들 앞으로 튀어나온 엄지발가락 발톱엔 백사장 모래가 언제나 조금씩 끼어들었다.


어느 날 우리 셋이 해변 끝에 붙어있는 담벼락을 따라 걷는데 모래 사이로 톡 튀어나온 캔음료 깡통 몇 개를 발견했다. 오렌지맛 탄산음료였다. 형과 사촌 형은 주변을 탐색했고, 담벼락 위로 툭하고 솟은 음료 박스들을 발견했다. 어떻게 담벼락 위에 올라갔는지, 사촌 형이 "와! 음료수가 엄청 많아"하며 소리 질렀다. 형이 "박스 윗부분을 찢어서 캔을 좀 빼봐"하자 사촌 형이 주섬주섬 박스를 열고 캔을 담벼락 아래로 하나씩 던졌다. 10캔, 스무 캔... 오렌지맛, 사과맛. 형은 입고 있던 잠바 지퍼를 가슴까지 올리고, 음료 캔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잠바는 금세 뚱뚱하게 부풀었다. "이제 가자!"형이 말했고, 사촌 형과 난 형의 뒤를 쫓아 달렸다.


"집에 가져갈 순 없어. 지붕 위에 음료수 캔을 보관하자."라고 말하고 형은 큰 이모집 담벼락 위로 올라가 조립식 건물 지붕 위 평평한 곳을 찾아 음료 캔들을 숨겼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해변 담벼락에 올랐다. 형이 박스를 하나 번쩍 들어 모래바닥으로 떨구었다. 박스를 열자 오렌지맛, 사과맛 음료수 캔이 한가득이었다. 형은 뭔가 작심한 듯 음료 캔을 흔들고 흔들었다. 형이 손으로 딱! 뚜껑을 열자 치익치익 콰콰콰 하며 음료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난 손뼉을 치며 깔깔거렸다. "다시 하나 간다!" 사촌 형은 캔을 온몸으로 세차게 흔들고 흔들었다. 딱! 치치치익 콰콰콰콰콰. 딱! 치치칙 콱콱. 석양이 떨어지는 바다. 그리고 검게 물드는 백사장을 배경으로 음료 캔들은 오렌지맛, 사과맛 분수를 울부짖으며 내뿜었다.


4.

얼마 후 큰 이모와 막내 이모와 함께 시내로 나가기 위해 큰길을 따라 걸었다. 큰 이모가 발걸음을 멈추고 "저기 음료수 공장 벌써 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쓰레기를 잔뜩 쌓아놨네."라며 혀를 차며 말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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