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뒤에 이는 허기를 좋아한다.
때가 되면 이는 허기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힘겹더라도 밥 한술 뜨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다시금 일상으로 스며든다.
슬픔은 슬픔이고 상실은 상실이니까.
남겨진 자들에게는 살아야 할 생이 있으니까.
내 생의 첫 장례식은
20대 중반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TV에서나 보던 검정 옷을 어색하게 꿰입고
남의 머리 위에만 얹어져 있을 줄 알았던 하얀 핀을 하고
나의 어른들이 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눈물을 꽉 씹어 눌러 삼키는 삼촌과 이모부.
아이처럼 발버둥 치며 우는 이모와 숙모.
그 광경은 살며 처음으로 마주한 가장 거대한 슬픔이었다.
늙어진 자식에게도 어미를 잃는 일은 그다지도 아픈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이틀 시간이 흘러 장지에서의 일정까지 마무리 한 후
추모 공원 초입에 있는 식당에서 다 같이 밥을 먹었다.
관 위로 흙이 뿌려지던 그 순간까지 통곡은 멈추지 않았건만
어째서인지 다들 말간 눈을 하고 조금씩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부족한 찬은 더 요청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밥그릇 앞으로 밀어 주기도 하였다.
나는 그 광경이 몹시도 생경하여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마치 타인을 관찰하듯 익숙한 내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슬픔은 슬픔이고 상실은 상실이구나.
이렇게 또, 살아가는구나.
슬픔 뒤에 이는 허기를 좀처럼 무시할 줄을 모른다.
나는 어찌 된 인간인지 울어도 밥을 먹으며 울고
까무러쳐도 일어나 끼니는 챙긴다.
슬프고 아프고 힘들어서 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뭐랄까 엉뚱하게도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과연 곡기를 끊을 정도의 슬픔은 어떤 걸까.
그 정도의 슬픔이 머무르는 곳에는
도대체 어떤 감정이 먼저 다녀갔을까.
나는 살며 영영 알 수 없을 것만 같기도 하고.
그냥 마냥 내내 모르고 싶기도 하고.
근 한 달여 동안 잃을 수 있는 것 중 대부분의 것을 잃었다.
그러나 단 하루도 굶은 날이 없고 대충 때운 날이 없었다.
오히려 오동통하니 볼살이 더 오르기도 했다.
그렇기에 하루만 울고, 그다음 날은 털어내고,
그다음다음 날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었다.
떠난 것들은 어차피 까무룩 잊혀질 생각에 실어 보내고
굳이 액정 속 사진을 들여다보며 남은 슬픔을 긁어모아 울지도 않았다.
마치 아이처럼 슬프지 않은 일조차 슬피 여길 때도 있지만
견디는 법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모르나 이만하면 어른스러웠다고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