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하고 끈이 끊어진다.
이제부터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돌아올 수 없는 무언가를 건너
마침내 나의 어느 한 면에 붉고 커다란 엑스 표를 긋고
이내 그 위를 검정으로 새카맣게 덮어버린다.
이제부터 이곳은 죽은 곳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홀로 남았다.
마침내 바래왔던 끝이 보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드디어 손만 뻗으면 가닿을 수 있어.
조금만 더 용기를 냈으면 해, 부디.
무너져 버린
삶 무너져 버린
나 기대 울 곳 없는
나 무너질 곳을 모르는
마음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
그런
모든
것들
걸 곳이 없는 전화
고요히 숨죽이고
침묵 그리고 또 침묵
메여있는 끈이 바람에 더욱 세차게 휘날리듯
나는 펄럭이다 찢어져 버리고 말아.
툭- 하고 끊어진다면 날아가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아 이제 진짜 제발 좀 그만하고 싶은데.
희망에 찬 눈으로 돌아봤다가 공허해지기를 수차례 반복해.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과거가 될 테니, 기대해도 좋아.
약해빠지고 약아빠진 나라서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이하였으니
끝내 살아남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야 말겠지.
짓이겨 말간 피를 뿜어내도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
아무도 울지 않고 아무도 웃지 않아.
아무도 기뻐하지 않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어차피 잊은 듯 살아갈 것이고
오늘 하루 그랬듯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살아가겠지.
끼워 맞춰질 곳을 잃은 블록이 되어 널브러져 있다가
지나는 이에게 밟히곤 해.
나는 되려 단단히 존재하며 틀을 깨지 않고 굳건하지만
너는 찡그리며 욕을 읊조리고 고통스러워하지.
왜? 나는 나대로 존재했을 뿐인데. 나를 밟고 지나간 건,
너잖아.
조용한 곳에서는 속삭이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러니 제발 입 좀 다물어.
나는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울 작정이니
그런 내가 보기 싫으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해.
자, 이제 땡하고 풀려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야.
혀는 청색으로 변하고 흩뿌린 것들은 갈색으로 퇴색할 준비를 해.
나는 이렇게 흘러가니,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면
그저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답이겠지.
흐르다 멈춰 선 곳에서 날 찾는다면, 그때에도 난 웃으며 널 다시 안아 줄 거야.
너 홀로 고여 있는 그곳에 기꺼이 찾아가 한 번 더 우리라는 이름이 되어 줄 거야.
그러나 네가 날 찾기까지 걸릴 억겁의 시간을 견딜 수 없으니
내가 먼저 안녕, 안녕.
이렇게 안녕을 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