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없이 걸어도.

by 고순

헬스장에 나왔더니 소나기가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빗속으로 우산 없이 들어가 걸었다. 내 몸을 연약하게 두드리는 빗방울의 감촉을 기분 좋게 느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비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르게 맞이한다. 비에 젖기 싫은 상황이면 짜증으로 나타났을 것이고, 비에 젖어도 되는 상황이면 기쁨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오늘은 후자에 속했다. 새로 산 슬리퍼 모양이 양말을 젖지 않는 구조여서 그랬을까. 헬스장 문 닫기 전에 부랴부랴 온 내가 조용하게 끝 맞추고 집 가는 길이라서 그랬을까. 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살아가는 나 자신이 기특해서 그랬을까. 어차피 샤워할 거니깐 젖어도 그만이라는 마음 때문에 그랬을까.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굳이 정답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집에 귀가하니 아까보다 비가 더 거칠게 쏟아졌다. 가로등 없이도 보이는 얇고 연약한 빗방울이 촘촘하게 모여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들의 부드러운 함성소리가 듣기 좋아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놨다.


이내 진정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조용해졌다. 먹구름은 어느 방향으로 갔을까. 거기에 걷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비를 맞이하고 있을까. 오늘만은 모두가 다정한 이 비를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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