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집과 골목길.

by 고순

1년 반 전에 살았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과 50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사한 이후로 그쪽으로 지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버스를 탔기에 정류장도 달랐고, 이용하는 상권도 집 근처 다른 곳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빌라로 이뤄진 주거단지였는데 아파트에 가려져 내가 살던 곳에서 보이지 않기도 했다. 같은 동네지만 언덕으로 된 지역 특성상 지금보다 더 고지대에 있는 전 집을 윗동네라고 불렀다. 그렇게 명칭을 정해놓고 살다 보니 그곳이 가깝지만 다른 지역이 돼버린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얼마 전에 우연히 윗동네 쪽을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집이 사라져 있었다. 무섭게 칠해진 회색의 높은 철담벼락이 그 집과 주변 부지를 크게 감싸고 있었다. 내부는 부서진 철근과 흙들이 뒤섞인 채로 가득 쌓여있었는데 불과 1년 전만 해도 작은 골목길 속 주택들이 무로 돌아간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느껴졌다.


5년 정도 살던 내 과거의 시간들이 무너진 건물아래로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골목길을 마주하고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이후로 그 길을 다시 걸어본 적이 없다. 그것을 본 게 대략 2달 전이니깐 지금은 공사가 더 진행 중일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작은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새로운 집에 새 사람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사물을 채워놓고, 추억을 만들고 나서 나중에는 어디론가 떠날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음번에 그 길을 지나갈 때, 새롭게 솟아오르는 건물에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작은 골목길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차 한 대만 주차할 수 있는 좁은 골목길과 지긋한 하수구 냄새, 건너편 주택 처마에 자리 잡은 비둘기둥지, 빨간색의 낡은 담벼락, 고양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재개발로 인해 서서히 사람들이 사라져 간 스산하고도 외로운 감각일 것이다. 인상 깊은 추억들이 몇 개 없는 것을 보면 내가 이 동네를 좋아한다기보단 있다가 사라져 버린 이전 집에 대한 계륵 같은 향수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눈이 무수히 쏟아지던 작년 1월, 골목길 앞 높은 담벼락과 그 사이로 우거진 소나무들 위로 잔뜩 쌓인 새하얀 눈앞에서 압도당한 감정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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