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의 정직한 리듬 위로.

by 고순

친구와 함께 건강한 보쌈을 배부르게 먹고 나오는 길. 가득 찬 배로 집에 간다면 무기력해질 것이 뻔하기에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랑 소화시킬 겸 가볍게 산책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보쌈 집 바로 앞에 언덕으로 되어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공원이 나왔다. 신축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같이 지은 깔끔한 공원이었다. 그런데 의자와 운동기구, 나무나 풀들이 별로 없었는데 그것이 왠지 예산이 부족했나 싶은 그런 느낌을 받아 허전해 보였다. 소수의 사람만이 동그란 트랙을 따라 걷거나 뛰고 있었다. 왼쪽에 불 꺼진 학교는 으스스하면서도 왠지 기분 좋게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와 나는 바닥에 깔린 장미색의 정갈한 원형 트랙길을 따라 우측으로 걸었다. 그러다 강한 불빛을 내뿜는 가로등 아래 놓인 말끔한 시소를 봤다.


나는 친구에게 시소를 타자고 말했다. 한쪽마다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두 개 있었는데 각자 맨 끝에 앉았다. 발바닥으로 지면을 밀면 자연스레 올라갔고, 내려올 때 엉덩이 무게중심을 뒤로 빼니 시소가 좌우로 흔들렸다. 서서히 시계초침의 일정한 간격처럼 정직한 리듬을 만들었다. 마치 멈추지 않는 흔들 인형 같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소에 몸을 맡긴 채 마주 보며 이사에 고민하던 친구의 이야기, 떠나간 사람들의 아련한 이야기,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추억, 사랑하고 싶은 마음 등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웃기도 하고 가끔 수직으로 느껴지는 공기저항의 감촉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시소,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있는 것 같지? 내가 계속 힘주면서 밀고 있는 거다.


나도 계속 힘주고 있었는데?


거짓말하지 마.


아니야 진짠데?

그럼 힘주고 있지 말아 봐. 나 혼자만 밀어볼게.


그 말을 한 다음 혼자 힘으로 시소를 움직였더니 힘이 두 배 넘게 들 정도로 무거웠다. 느릿하고 맥없는 움직임은 몇 번 반복하니 제풀에 지쳤다. 우리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반동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로 자신만이, 이 시소의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줄 알았다니. 우리는 서로 자기밖에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호탕하게 웃었다.


시소를 20분 넘게 즐긴 후, 이제는 친숙해진 공원을 빠져나왔다.—수직운동 덕분인지 소화가 아주 잘 됐다.— 30년 인생 시소를 20분 넘게 탄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시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재밌다니. 시소를 함께 타고 싶은 사람을 여기에 데려와 단 둘만의 리듬을 만들면서 사이좋게 마주 보며 놀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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