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온몸으로.

by 고순

12월 4일 저녁에 첫눈이 내렸다. 낮부터 첫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1시간 간격으로 날씨를 보여주는 날씨 어플에는 18시 눈 올 확률 60%, 19시 눈 올 확률 40%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눈이 얕게 내릴 것 같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역시나 집에 오는 길, 하늘에서 뜨문뜨문 내리는 진눈깨비를 느낄 수 있었다. 첫눈이라고 하기에는 하찮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눈이 펑펑 내리기라도 한다면 밖으로 나와 온몸으로 너를 맞이할 텐데. 그렇게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집에 오자마자 글을 쓰며 고독의 시간을 보내던 중,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첫눈이 내리고 있다며, 격한 감정을 수화기 너머로 내뿜었다. 나는 '눈이 왔으면 얼마나 왔겠어'라는 생각으로 퉁명스럽게 베란다를 쳐다봤다. 눈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불과 1시간 만에 눈이 가득 쌓인 창문 너머의 세계로 손을 뻗어 흰 눈의 연약한 감촉을 느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들끓었다.


나는 달리기를 하기 위해 히트텍과 우비 바람막이를 입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공원까지 걸어가는 길. 발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감촉, 사각사각 소리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몸도 풀지 않고 신발끈만 고쳐 맨 다음 300m가 조금 넘는 뱅뱅 트랙길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족저근막염으로 달리기를 중단한 지 반년 만에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얼마나 그리웠을까.


낭만을 품고 뛴 첫눈 러닝은 아름답지도 순탄하지도 않았다. 대자연에 압도되는 강한 눈바람을 온몸으로 맞기 바빴다. 후드를 뒤집어써야 했고, 차가운 손은 바람막이 소매 안으로 넣어야 했다. 달리는 동안 면바지와 러닝화는 조금씩 젖어갔다. 속눈썹과 얼굴 위로 눈결정이 차갑게 맺히는 것도 느껴졌다. 눈보라를 뚫고 나아가는 산악인처럼 외로운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나아갔다. 계속 달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원했는지도 모를 만큼 육체의 감각만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다 뛰고 집 가는 길, 공원에 소나무와 잎사귀 하나 없는 가녀린 나무, 눈향나무인지 회양목인지 모를 두툼한 나무. 그 머리 위로 흰을 가득 얹힌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우연인지 불행인지 차가운 휴대폰은 카메라를 열자마자 꺼져버렸고 다시 켜지지 않았다. 아름답고 전투적인 풍경을 오감과 마음으로 조용히 남겼다. 공원 놀이터에는 신난 어린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거나 놀고 있었는데 나와 그들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눈을 맞이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첫눈이 내렸다고 아픈 발을 이끌고 냅다 달린 나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나를 자연과 맞닿게 했을까. 6개월 동안 참아온 달리기를 뛴 것은 정말 눈 때문이었을까. 온몸으로 내달리면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흰의 감촉을 느낀 그날은 내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전 10화늘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