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하나,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무언가 경험을 하고 나서 기념하는 물건을 딱 하나만 산다. 딱 하나만 있는 것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최근에 조금 달라졌다. 얼마 전 유후인을 관광하다가 한 소품가게 입구에 놓인 작은 도자기에 시선이 끌려 발걸음을 멈추게 됐다. 티베트여우처럼 찢어진 눈을 가진 몸이 볼록한 강아지 모양의 미니 화분이었는데,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가 같이 놓여있는 모습이 엄마와 아들처럼 보여서 너무 귀여웠다. 그것을 사고 싶었지만, 실용적으로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
유후인을 걸어 다니는 내내 머릿속에 강아지화분이 아른거렸다. 결국 가게를 다시 찾아갔다. 평소 내 소비철학처럼 하나만 사려고 했다. 그런데 내 손에 들린 강아지 한 마리를 보자, 마음이 턱 하고 걸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아까 느낀 온전한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이었다. 강아지 화분 두 개를 나란히 손에 들고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빠져든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산 강아지 모자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사 온 물건이다. 강아지 모자는 우리 집 티브이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티브이 선반에 깔린 옅은 황갈색의 천이 강아지 색과 비슷해서 아주 잘 어울린다.) 그 옆에 작은 쓰레기통을 사용할 때마다 무심한 표정으로 도도하게 서 있는 강아지 모자와 눈이 마주치는데, 그럴 때마다 역시 둘 다 데려오기 잘했다는 마음으로 소박한 미소를 짓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