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다문 입.

by 고순

부지런한 사람은 아마도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바로 할 것이다. 배부름과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섰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수세미에 거품을 내고 차분히 그릇을 닦았다. 깨끗함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배수구망을 꺼내서 정리하고 있는 도중, 음식물쓰레기봉투가 배수구 쪽으로 넘어진다. 황급히 봉투를 잡아채 옆으로 세운다. 음식물쓰레기에서 빠져나온 더러운 국물과 찌꺼기들 때문에 물이 뿌옇다. 어라,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싱크대 물이 안 내려간다. 원인을 찾기 위해 물속에 손을 넣어 휘적거린다. 배수구의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딸기와 방울토마토가 끼여있는 게 느껴진다. 그것을 꺼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손끝에 밀려 배수구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나무젓가락으로 열심히 쑤셔보지만 역부족이다. 이게 무슨 봉변인지 한숨이 나온다. 갑자기 일이 커졌다.


때마침 작은누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친구처럼 편한 작은누나에게 실컷 하소연을 한다. 바보라는 소리와 함께 비웃음을 듣는다. 통화를 하면서 물이 천천히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다음 싱크대 밑에 선반을 열어 배수구 호스를 분리한다. 틈에 끼인 고인 물이 바닥에 뚝뚝 흘러내린다. 맡고 싶지 않은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온다. 옷걸이를 가위로 잘라 최대한 길쭉하게 만든 다음 호스를 최대한 깊게 쑤셨다. 배수구를 다시 재조립한다. 물을 트는데 물이 차오른다. 다시 시도한다. 이번에는 잘 된다. 다행이다. 뚫려서 다행이다. 혹시 몰라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제야 누나와의 통화도 끊었다.


뒷정리를 하고 나서 침대에 누워 쉬다가 잠이 든다.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시큼한 사과와 식초가 뒤섞인 이상한 냄새가 느껴진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였다. 주방의 레인지후드를 작동시키고 베란다 창문도 잠시 열어둔다. 영하의 온도지만 썩은 공기를 그대로 둘 수 없다. 싱크대와 바닥 이곳저곳을 알코올소독제를 뿌리며 키친타월로 깨끗하게 닦는다. 부지런한 저녁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자기 전, 주방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왜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 건데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불만과 불행을 증폭시킨 이유는 입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나에게 하소연하면서 내 감정을 더 증폭시킨 게 분명했다. 짜증은 말할수록 계속 짜증만 낳는다. 불만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의 입이 왜 삐죽 튀어나오는지 알 것 같다. 손을 뻗어 내 입이 어떤지 만져봤다. 조금은 볼록해 보였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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