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름 앞에서.

by 고순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전부터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고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몸무게가 3kg이나 빠져있었다. 항상 70kg을 유지하던 나였는데, 오늘 아침을 두둑이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67kg이 된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 그 덕분에 몸은 더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은 딱 필요한 살만 붙어 있었지만, 왜소해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생 마른 체형으로 살아온 내게 몸무게를 찐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 이번 연휴에 과식을 해서 다시 살을 찌우는 거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거야. 그러고 나서 매 끼니마다 과식했다. 밥은 두 공기를 먹었으며 군것질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배부른 상태가 될 때마다 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과식을 싫어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 불쾌한 감각이 싫었기 때문이다. 배부른 돼지가 될 바에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다. 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은데, 배부른 돼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흔들의자에 몸을 기댄 채 이 배부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배부른 게 과연 나쁜 걸까. 4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보릿고개처럼 풍족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전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시절은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나는 정말 좋은 나라와 행복한 시절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배부름을 거부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부름을 온전히 만끽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색의 마침표에 도달하자, 나는 베란다 너머 창밖의 흘러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보면서 이 배부름을 마음 편히 즐기기로 했다. 뱃속에 차있는 음식들의 무게감을 느끼면서 천천히 소화되도록 흔들의자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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