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친구들에게 글을 공유하고 있다. 그 글은 내가 이북을 읽다가 밑줄을 친 글 중에 하나이다. 글을 꺼내면서 나도 다시금 생각하고, 친구들도 좋은 구절을 읽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글을 올릴까 하면서 기분 좋게 고민하기도 하고, 그 문장을 다시 곱씹으면서 잠깐의 사색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묻혀버릴 글조각들을 매일매일 다시 꺼내는 좋은 습관이 내게 생긴 것이 참 마음에 든다. 그러다가 문득,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생각을 남긴다.
그냥 밑줄은 마음에 남아있지만,
생각을 남긴 것은 내 마음을 적는 것이다.
그동안 쌓여있는 1,577개의 밑줄 친 글들에 대해 코멘트를 다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책을 완독 한 뒤에 코멘트를 일일이 적곤 했었는데 자연스레 게을러지게 되어 그동안 잊고 살았다. 이전처럼 코멘트를 다시 적으니, 예전의 생기 있고 의지가 타오르던 나로 다시금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의 한 구절을 이렇게 적었다.
"아마 어떤 사람에겐 자기희생도 감미로운 모양이야."
감미롭다, ~이 달콤하고 부드러워 기분 좋은 상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는 것을 속상해하지 않으며, 그것조차도 달콤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사랑의 역설이고, 이성을 거스르는 원초적인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없는 감미로움을 갖고 있다.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자기희생이 감미롭다는 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그때의 감각을 떠올려 보면, 자기희생이라는 감정에 도취된 모습으로만 단편적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적은 글은 그때보다 더 짙은 감정을 내뱉고 있었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의 미학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밖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온전한 내 생각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굳게 믿으며, 책 속에 쌓인 문장들을 부지런히 뒤적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