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벌써 하루, 벌써 일주일,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몸과 마음속에 조용히 채워지고 있다. 일기를 쓸 때마다 2026년 대신 2025년이라고 오타를 내곤 했지만 이제는 틀리지 않고 정확히 쓴다. 겨울의 차가움도 이제는 서늘한 바람만이 남아 내 몸을 느긋이 희롱할 뿐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삶은 빠른 속도로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사실을 느낄 때면 어쩐지 등골이 서늘하기만 하다.
내게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은 몇 가지 물건들로 기억된다. 빨래통에 넣어버리는 양말, 매일 꺼내 먹는 단백질 두유, 밤마다 꺼내 쓰는 30cm 남짓 되는 치실, 자기 전에 붙이는 구호흡방지테이프. 그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가는 것을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이미 저 멀리 과거로 되어버린 시간을 떠올려본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시간이 불쑥 떠오르는 게 신기하기도 하며,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온전히 떠오르지 않고 제멋대로이기만 하다. 그때의 무거운 고민도 지금 와서 보면 사소하기만 하다. 어찌 됐든 기억은 조각난 필름처럼 드문드문 떠오르거나 사라지는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이 과거로 차츰 쌓여가지만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소멸이 아닐까. 소멸과 소멸 사이에 있는 현재가 문득, 소중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부터 검정치마 <Flying Bobs>의 노랫말이 계속 입에 맴돌았다.
그때는 알 수 없었지요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쩌면 저주가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난 그저 열일곱을 살던 중이었어요
귀가 찢어질 듯 매미가 울던 1999년의 여름밤
혹독하고 푸르던 계절이 깊게 긁고 간 자리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면
난 당장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같은 실수들을 또다시 반복하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전부 다 내가 원했던 거예요
이 모든 게 다 내가 원했던 거라구요
이 노랫말처럼,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누가 내게 바보라고 떠들어대도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고개를 돌려 뒤만 들여다보면 현재도 미래도(또는 상상을)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기억이 어찌됐든 그냥 보듬어 안고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러고 싶다. 어차피 그런 날들의 연속이니,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