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삶을 찬란하게 보내고 싶어서 12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봤다. <파리, 텍사스>라는 영화였는데, 사라진 형을 동생이 4년 만에 찾게 되고, 동생네 부부는 조카를 자식처럼 돌봤지만, 조카는 아빠와 함께 엄마를 찾으러 간다. 마침내 엄마를 만나게 된 형은 엄마와 아들을 재회시킨 뒤 조용히 사라지며 끝이 난다. 나는 영화 크레딧이 올라간 뒤, 보모(동생네 부부)는 절대 부모가 될 수 없다는 뜻일까? 부모의 빈자리는 보모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걸까? 형네 부부가 다시 예전처럼 셋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형은 마지막에 떠난 걸까? 그런 물음표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그 질문들이 머릿속에 남은 채,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점에서 문학과 지성사 시집들을 꺼내 읽었다. 그런데 실내의 따뜻함이 과한지, 내 몸에서 열이 자꾸 샘솟았다. 외투를 벗어도 열은 식을 줄 모르니,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아니면 체온을 조절하는 건지, 도통 시집에 집중되지 않았다. 결국 시 10편도 읽지 못하고 서점 밖으로 빠져나왔다(가끔은 머리보다 몸에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래도 시 한 구절이 기억에 남았다. 더위에 이성이 마비되어 이성적인 외로움에서 이성은 사라지고 외로움만 남았다는 말. 누가 쓴 시인지, 시 제목이 무엇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문장만은 머리에 남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홀로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날이 있다. 문장들이 술술 떠오르는 날. 그런 날은 일기장에 빼곡하게 글을 토해낸다. 그냥 그렇게 떠오르는 것들을 쏟아내는 것 밖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날이다. 어쩌면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늘 그랬으면 좋으련만, 번뜩이는 영감처럼 드물기만 하다. 그렇게 한바탕 문장을 쏟아낸 뒤, 억지로 더 쓰고 싶지 않아 책을 꺼냈다.
다자이오사무의 ≪쓰가루≫란 책이다. 자신의 고향인 쓰가루를 한 달 남짓 여행하면서 고장의 역사와 기행문이 보기 좋게 섞인 에세이다. 나는 역사에는 영 흥미가 없는 타입이라 역사 이야기할 때는 조금 지루했다. 더군다나 다른 나라의 고장 역사를 읽다 보니, 듣도 보도 못한 일본어들이 쏟아지는 것이 미주를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자이 오사무의 마음 때문이다. 자조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전날 밤에도 침대 속에서 혼자 읽다가 박장대소 웃기도 했다. (역시나 내 스타일이다.) 이대로 이 책을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아,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나 적고 가야겠다.
어른이라는 건 쓸쓸한 법이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조심하느라, 남남처럼 서먹서먹함을 떨치지 못한다. 어째서, 그리 조심스러워야만 하는 걸까? 그 답은 별거 아니다. 멋들어지게 배신당하고, 된통 창피를 당한 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라는 발견은, 청년이 어른으로 이행하는 제1과다. 어른이란, 배신당한 청년의 모습이다.
여기에 나는 멋들어진 메모를 남겼다.
나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말처럼 삶이 조심스러워진다. 나이가 듦에 따라 본연의 순수함을 잃어가고, 자유를 잃어가고, 생기를 잃어가고, 짐에 짓눌리기도 하며,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많은 꿈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결국 현실만이 남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다. 또한 스스로 배운 것들이 나를 살게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나를 나라는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그러니 경직된 마음을 유연하게 하고, 나라는 틀 안에 고여 영원히 썩어 문들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지막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쓰가루≫를 다 읽고 싶었지만, 이미 해는 저물고 밤 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액상과당이 싫어 시킨 커피는 다 마시지도 못한 채 절반정도 남아있다. 독한 커피의 씁쓸한 맛이 혀와 소화기간에 절어져 있는 기분이 불쾌하게 느껴져 입을 꽉 닫았다. 아, 양치질을 하고 싶다. 배가 공허하다. 허기를 채우고 싶다. 렌즈 낀 눈이 건조하다. 이런 몸의 신호를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몸에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또 찾아온 것이다. 결국 나는 자리를 일어나야만 했다. 집 가는 길, 바람 불며 외로이 걸어가지만 이 정도의 하루면 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