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방에서 혼자.

by 고순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은 거실에 TV소리로 가득하다. 사실 나는 그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책상은 거실에 있는데 그 소리가 날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했는데 TV와 통화하는 소리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상태로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의자에 일어나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주섬주섬 꺼내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옷과 박스더미만 있는 작은방 바닥에 앉았다. —바닥이 제법 따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닥에서 글을 쓰려고 하니깐 자세가 불편했다. 좌식을 하고 싶지 않았고, 거실에 있는 책상을 방으로 가져올 수도 없었다. 묘안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누워서 글을 쓰는 거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 거치대를 작은방으로 가져왔다. 나는 이불을 깔고 위에 정자세로 가지런히 누운 다음, 거치대에 놓인 아이패드의 각도를 목이 불편하지 않게 조절했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배 위에 올렸는데 경사가 완만하지 않아 타자 치기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허벅지 경사면에 키보드를 올려놓았다. 타자 치는 자세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잠깐 글을 쓰기에는 제법 쓸만한 자세였다.


글을 쓰려고 보니 여전히 거실의 소리가 신경 쓰였다. 잠잘 때 쓰는 귀마개를 양쪽 귀에 꽂고, 그 위로 헤드셋을 썼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던 목소리가 이제는 어떠한 형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작게 들렸다. 갑자기 좁은 방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맞는 이불 위에 일자로 누워 귀마개와 헤드셋을 쓰고 글을 쓰려고 하는 내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난 예민한 사람이 맞다.— 나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처럼 나만의 방이 필요한 사람이 분명하다. 적어도 혼자 있을 시간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패드를 열어 일기장을 꺼냈다. 어제 일기를 쓰지 않고 잠잤기에 어제 쓰려던 일기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어제의 기억과 감정 일부를 글로 바꾸는데 성공했지만 이 글이 어제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내가 쓰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제는 어제로 사라져 버린 것만 같은 기분. 밀린 일기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말 같다. 그것은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의 일기는 그날에 뭐라도 꼭 써야지라고 다짐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머릿속에 글들이 다 쏟아져 나왔는지 손이 멈췄다. 자연스레 E북을 꺼내 읽었는데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눈이 피로해졌다. 나는 이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아 휴식을 취한다는 핑계로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누워서 명상하는 것을 가끔 시도하지만 명상이라고 말하고 낮잠이라고 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선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뜨니 시계는 11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2시간 반동안 잠들었는데 방 불을 켜놓은 채로 잠들어서 그런지 긴 잠을 잤는데도 개운하지 않았다. 어차피 잠잘 거였으면 씻고, 불 끄고 편하게 잤으면 좋았잖아라고 늘 생각하지만 그런 일렬의 행동을 다 하고 나면 정말로 잠자야 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깐 쉬고 싶었지, 잠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깐 말이다.


몸을 간신히 일으켜 나온 거실은 아까와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다. 내 발소리와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TV와 방불도 모두 꺼져있었고 거실 베란다로 들어오는 바깥의 세상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3시간 만에 생기가 사라져 버린 집안이 꿈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 가서 씻고,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잠자려고 이불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일기장에 쓸 말을 다 써버린 것처럼 오늘 하루도 그렇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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