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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전부터 침대에서 울었다.

외국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by 남선우

먼지를 치우고 AZ를 만나 급하게 선풍기를 사 온 입실 다음 날 처음 한 것은 또 청소였다. 청소, 청소, 또 청소. 다행히 청소만으로 첫 날을 마무리하지는 않았고, 오후에 유학생 미팅에 나갔다.


단체 활동에 관심이 없고 내향적인 성격인 내가 거기에 나갔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가서 멀뚱멀뚱 서 있더라도 가자는 마음이었다.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살면서 그렇게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친구들을 한 공간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들 어쩜 그렇게 잘 접근하고 대화를 잘하는지. 나 같은 말 못 걸어 병에 걸린 학생들을 위해 유학생회에서 빙고 게임을 주최했다. 이 핑계로 서로 말도 걸고 작은 질문들을 하라는 취지였겠지. 처음에는 기웃기웃 다가가보다가 기가 다 빠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외톨이 같이 앉아있는 나에게 빙고 종이를 들이미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한 중국인 친구와는 서로의 이름을 한자로 주고받았다. 서로 이름의 뜻을 공유하니 재미있었다. 내가 이러려고 한자를 공부했나 조금 뿌듯했다. 그리고 LA에서 온 친구와도 잠깐 말을 나눴다. 금발에 되게 성격 좋아 보이는 친구였는데, 얘기하다 보니 나랑 같은 과 동기였다. 그 후 전공 수업에서 만났을 때 나 기억나냐며 용기 내 말도 걸어보았다. 빙고판은 몇명의 한국인들 덕에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기숙사 미팅이 있었다. 스위트메이트 AZ와 같이 갔다. 그는 워낙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서 금방 옆에 애들과 얘기를 나눴다. LA에서 온 중국계 미국인 R과 인도에서 온 D와 상당히 친해졌다. 영어 회화 실력이 그럭저럭인데 이렇게 영어가 거의 모국어인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경우, 도저히 대화에 낄 수가 없다. 처음에는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더라도, 내가 그들이 쓰는 구어체와 은어들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들끼리 서로 돕자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던 언니도 결국 사람을 앞에 세워 두고 다른 사람들이랑만 얘기하는 무례함에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혼자 방으로 돌아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저 너무 속상했고 울적했다. 침대에 누웠는데 바보같지만 눈물이 나왔다.


외향적이지도 않고 해외 경험도 없었던 나는 결국 이렇다할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물론 재학 중 그래도 가깝게 지낸 친구들과의 추억은 소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어권 학생들, 중국 유학생 모두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과 다닌다. 한국 유학생들도 나랑 살아 온 경험이 매우 달라 서로 공감하기 쉽지는 않았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도 몇몇은 같이 몇번 외출도 하고 서로 생일 축하도 했지만 엄청 친해지기는 어려웠으며 졸업까지 인연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들 굳이 언어적, 문화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친구를 사귀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뭐, 내가 그 정도로 매력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유학 중 정말 외로웠다. 부끄럽지만 외로워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홀로 방에서 계속 울적해할 수는 없었다. 같이 할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경험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혼자 다닌 덕에 많은 유학생이 가지지 못한 경험을 얻었고 그만큼 더 배움과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혹시 기대했던 것만큼 글로벌하게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반대로 혼자여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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