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모습
집안에 옷장을 활짝 열면 입는 옷과 입지 않는 옷이 눈에 확 들어온다. 평소 입는 옷만 손이 가다 보니 입지 않은 옷이 빛을 보게 해달라고 손짓한다. 잠시 고민하다가도 결국 자주 입는 옷을 선택한다. 선택받지 못한 옷은 계속 옷장에 머물러 있다. 언제까지 머물러 있어야 할지는 미정이다. 17년 3월 중순쯤 이사를 앞두고 옷을 대거 정리한 적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몇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는 옷이 상당했다. 추억이 녹아있는 옷부터 기억 속에서 사라진 옷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고 놀라울 정도였다. 정리 후 반 정도 남은 옷장의 공간을 보면서 '왜 이렇게 입지도 않은 옷을 옷장에 한가득 쌓아두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꺼내다가도 행동을 주저하며 옷장의 문을 여닫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옷장에 잠들어 있는 옷을 봐도 못 본 척 외면한 적도 많다. 입지 않는 옷들이 있어야 할 곳은 옷장이 아닌데 말이다. 입지 않은 옷은 당장 꺼내 과감하게 버리거나 기부하거나 재활용하는 정리가 필요하다. 만약 정리하지 않은 체 현상을 유지한다면 잘 보관해야 할 소중한 옷이 옷장에 못 들어갈 수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업무적 가치가 낮은 일들이 뒤섰여 있다면, 자연스레 시간과 에너지가 분산된다. 어느 순간 비본질적인 일에 치여 실제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을 놓치게 된다. 현재 상황을 무감감하거나 무신경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원래 그런 거라고 '원래'라는 단어에 빠져 있다면 당장 나와야 한다. 작은 문제의 씨앗이 어느 순간 켜져 감당치 못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올바른 시각으로 다시 시간 속 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리하지 못한 이유를 알면 용기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몇 가지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지금은 깔끔한데~' 문제 인식의 차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해야 문제로 보인다. 그때부터 개선할 의지가 생긴다. 내가 원하는 모습 To-be가 있어야 지금의 상황 As-is 사이에 Gap이 발생하며 그때부터 문제는 나에게 문제로 다가온다. 문제 인식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을 열심히 하는 데 생각만큼 인정받지 못하거나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일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문제 인식 수준을 높여 내가 하는 일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야 한다. 타인으로부타 받는 피드백을 도움말 삼아 셀프 진단을 해봐야 한다. 보려고 하면 보이고 찾으려고 하면 찾게 된다. 더 나은 결과의 가능성을 스스로 놓치면 안 된다. 문제를 그냥 덮지 말고 문제를 보는 문제의식을 높여 제대로 현 상황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언젠가는 입을 거야~' 기대심리다. "지금은 유행이 지났지만, 다시 유행이 돌아올 거야", "지금은 살이 쪄서 못 입지만 다이어트해서 다시 입을 거야" 이와 같은 생각을 말한다. 나쁘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다만 옷장에 잘 보관되어야 할 옷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입지 않는 옷이 가지런히 걸려 보관되어 있다면 문제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을 다 잘하려고 하거나 모든 사람의 요청을 다 수용해도 괜찮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적이기에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인정하고 받아들어야 할 지점이다. 따라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선택과 포기로 생기는 기회비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 목표달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선택했다면 나머지 일들은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머지 일들이 눈에 밟힐 수 있다.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거절의 용기다. 거절의 용기는 선택과 포기로 생기는 기회비용의 정확한 계산으로부터 나온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용기 있는 선택과 포기는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한다. 막연한 기대가 확실한 기대로 바뀌게 된다.
세 번째는 '비싸게 주고 샀는데~' 매몰 비용이다. 비싸게 주고 사서 아직 한참 더 입어야 하는데...하며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진다. 매몰 비용의 함정이란 '앞으로 이익보다 손해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들인 누적 비용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본전 생각에 사로잡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손실을 안고 일을 추진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카지노나 도박판에서 나타난다. 돈을 조금 잃으면 그때부터 본전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배팅하게 되며 결국 남은 돈마저 다 잃는다. 미래의 가치보다는 과거의 들인 비용, 노력, 시간 등으로 인해 생각과 판단이 흐려져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앞으로 더 큰 손실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업무 상황에서도 매몰 비용의 함정은 개인이나 조직에 위험한 위기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장기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일수록 중간에 중단되면 손실이 크고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끝까지 추진하는 경우다. 이러한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프로젝트를 계속 지속하다 보면 결국 손실만 확대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혹시 매몰 비용의 함정에 빠져 시간과 노력을 쏟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일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된 일을 그만뒤야 한다. 지금이라도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증가시키는 기회를 붙잡아 함정의 구멍에서 벗어나는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같은 현상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여진다. 지금까지 해오던 행동이나 삶의 패턴을 돌아보고 생각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대로 볼 수 있는 용기와 실천적 행동을 이끄는 용기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과 도전하는 성장 마인드 셋을 통해 시간 정리를 시작해보자. 무의미한 다수 속에서 본질적인 소수에 집중하기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