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뒤로 부모님 댁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20개월 된 아들을 보러 어머니가 기다리신다는 걸 아니까. 초인종을 누르면 어김없이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는 아이에게만 눈이 가신다. "우리 강아지 왔네!" 하시며 아이를 안아 드는 어머니의 얼굴은 환하다.
그 얼굴을 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어머니의 주름이 이렇게 깊었나. 손등의 핏줄이 이렇게 불거졌었나. 아이를 안아 올리시는 어머니의 팔이 가늘게 떨리는 게 보인다. 무겁지 않냐고 물으면 "아니야, 괜찮아"라고 하시지만, 예전처럼 가볍게 번쩍 드시지는 못한다.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까르르 웃는다. 어머니도 웃으신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다가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행복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드는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 급히 부모님 댁으로 갔다. 보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는 박수를 치시며 좋아하셨다. "우리 강아지 벌써 이렇게 컸네." 그런데 아버지는 조용히 앉아서 그 모습을 보기만 하셨다. 예전 같으면 바닥에 엎드려서 같이 놀아주셨을 텐데. 무릎이 아프신 거였다.
와이프와 함께 육아를 하면서 새삼 깨닫는다.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나면 녹초가 된다. 20개월짜리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그것도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어머니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말씀하신다. "너는 참 잘 먹는구나. 네 아빠는 어릴 때 밥을 안 먹어서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몰라." 30년도 더 된 이야기.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이 밥그릇을 닦는다.
아이는 거실에서 뛰어다니고 우린 차를 마신다. 어머니가 묻는다. "육아가 많이 힘들지?" 나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안다. 얼마나 힘든지. 당신도 그 시간을 지나오셨으니까. 다만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당신은 훨씬 젊으셨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늙으셨다는 것.
부모님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흐른다. 내가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님은 조금씩 줄어드신다. 아이의 첫걸음을 보며 기뻐하시는 그 얼굴 뒤에, 깊어진 주름과 가늘어진 목소리가 있다. 손주를 보는 행복 뒤에, 더 이상 바닥에 엎드려 놀아줄 수 없는 무릎이 있다.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면 어머니가 현관까지 따라 나오신다. "조심히 가고, 다음에 또 와."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나는 차 안에서 아이를 뒤돌아본다. 눈이 말똥말똥하다. 우리 아들은 자기 방이 아니면 잘 자지 않는다. 꿋꿋이 버틴다. 그게 또 웃긴다.
이 아이도 언젠가 나처럼 자기 아이를 안고 우리를 찾아올까. 그때 나는 지금의 어머니처럼 손주를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의 나처럼, 행복해하는 내 얼굴 뒤에 깊어진 주름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질까.
부모님 댁을 나서며 생각한다. 다음 주에도 와야겠다고. 아이에게도 좋고, 부모님께도 좋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도 필요하니까. 어머니의 웃음을 더 많이 보고 싶으니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아이가 차 안에서 옹알거린다. 졸리지도 않은 모양이다. 나는 백미러로 아이를 본다. 그리고 방금 떠나온 부모님 댁 쪽을 본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가 환하다. 아직도 현관 불을 켜두고 계신 거다. 우리가 집에 잘 들어갈 때까지.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춘다. 와이프가 조수석에서 조용히 말한다. "어머니가 많이 늙으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은 하지 않는다. 목이 메어서. 신호가 바뀌고 차는 다시 움직인다. 집으로 가는 길.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