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작은 마을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면, 나는 늘 차분한 팝을 듣는다. 노라 존스나 잭 존슨 같은 곡이 좋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흐르는 동안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아직 가보지 않은 그 마을의 오후가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계획을 세운다는 건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머릿속에서 여행을 먼저 한 번 다녀오는 것. 나는 구글 지도를 열고 그 마을의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작은 역 앞 로터리, 구불구불한 골목길, 언덕 위에 자리한 신사. 스트리트 뷰로 본 풍경들이 내 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마을의 아침은 어떤 냄새일까. 역 앞 빵집에서는 무슨 빵을 팔까. 그런 걸 생각하는 시간이 나는 좋다.
여행 계획의 즐거움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의도적으로 빈 공간을 남겨둔다. 점심때 어느 식당에 갈지, 오후 세시쯤엔 무얼 할지. 그런 건 정하지 않는다. 여행의 진짜 맛은 우연에 있으니까. 계획은 하나의 뼈대일 뿐이고, 살은 그곳에서 채워지는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그 마을의 게스트하우스 리뷰를 읽는다. "창문을 열면 산이 보였다"거나 "주인이 직접 담근 매실주를 내주었다"는 식의 문장들. 그런 사소한 디테일들이 내 여행의 윤곽을 조금씩 선명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잠만 자고 가는 숙소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그 마을을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때로는 계획을 세우다가 문득 멈추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왜 나는 이 작은 마을에 가고 싶은 걸까. 거기엔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SNS에 올릴 만한 멋진 사진도 찍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그저 거기 있고 싶다. 그 마을의 시간 속에 조용히 섞여 들어가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들려올 새소리, 저녁때 산 너머로 지는 해, 작은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따뜻해진다.
여행 계획은 일종의 명상이다.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다른 시간과 공간을 그려보는 행위. 실제로 그곳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계획만 세우고 떠나지 못하는 여행도 많다. 하지만 그것조차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 계획을 세우는 그 시간만큼은 나는 이미 거기에 있었으니까.
지도를 접고 노트를 덮는다. 차분한 팝은 아직 흐르고 있다. 창밖은 어둡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작은 마을의 햇살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