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쯤 되면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아메리카노도 좋고 카페라떼도 좋지만, 요즘은 에스프레소가 좋다. 작은 잔에 담긴 진한 커피. 세 모금이면 다 마셔버리는 그 작은 것.
회사 근처 카페에 들른다. 체인점이 아닌 작은 카페. 바리스타는 젊은 남자다. "에스프레소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묻는다. 단골이 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김이 난다. 쉬익, 소리와 함께 커피가 추출된다. 그 과정을 지켜본다. 까만 액체가 작은 잔을 채운다. 위에 황금빛 크레마가 살짝 떠 있다. 완벽하다.
잔을 받아 든다. 따뜻하다. 카운터 한쪽에 서서 한 모금 마신다. 쓰다. 혀끝이 찌릿하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맛이 좋다. 고소함, 약간의 단맛, 복잡한 향. 삼키고 나면 입안에 여운이 남는다.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는 간결함에 있다. 불필요한 게 없다. 물로 희석하지도 않고, 우유로 부드럽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냥 커피 본연의 맛. 솔직하다. 쓴 건 쓰다고 말하고, 진한 건 진하다고 말한다. 거짓이 없다.
두 번째 모금을 마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좋다. 따뜻함이 몸속으로 퍼진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 오후의 나른함이 사라진다. 카페인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창밖을 본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모두들 바쁘다. 빠르게 걷고, 휴대폰을 보고, 어딘가로 향한다. 나만 여기 서서 작은 잔을 들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필요하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모금. 이제 잔이 비었다. 아쉽다. 하지만 그게 에스프레소의 매력이다. 길게 마실 수 없다. 몇 모금이면 끝난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길게 끌 수 없으니까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바리스타에게 잔을 건넨다. "잘 마셨습니다." 그는 미소 짓는다. "다음에 또 오세요." 나는 카페를 나선다. 입안에 아직 커피 맛이 남아 있다. 쓰고 진한 그 맛.
회사로 돌아가는 길. 오후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 회의, 메일, 보고서. 하지만 이제 괜찮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나를 준비시켰다. 작은 휴식, 짧은 여유. 그게 전부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쓴 걸 왜 마셔?" 나는 대답한다. "쓰니까 좋아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괜찮다. 이해받으려고 마시는 게 아니니까.
에스프레소는 일종의 의식이다. 하루 중 잠깐 멈추는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커피 맛에만 집중하는 시간.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누구와 대화하지도 않고, 그저 작은 잔을 들고 서 있는 시간.
그 시간이 나를 지탱한다. 바쁜 하루 속에서 나만의 틈. 에스프레소 한 잔이 채워주는 틈.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오후 세시쯤, 작은 카페에서, 작은 잔으로 마시는 진한 커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일도 아마 그 시간에 그 카페에 갈 것이다. 바리스타는 내가 뭘 마실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받아 들고, 카운터에 서서 천천히 마실 것이다. 세 모금. 그리고 하루는 계속될 것이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주는 행복. 거창하지 않다. 크지도 않다. 하지만 확실하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