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선 전동차가 동작역을 지날 때, 나는 항상 창밖을 본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손을 멈추고, 잠깐 동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출근길의 피로가 사라진다. 강 위로 떠 있는 작은 배들, 한강공원을 조깁하는 사람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 모든 것이 지나간다.
동작역 근처에서 바라보는 한강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노들섬이 보이고, 그 너머로 여의도의 빌딩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계절에 따라 강물의 색깔도 달라진다. 봄에는 연두색을, 여름에는 짙은 초록을, 가을에는 갈색을, 겨울에는 회색을 띤다. 같은 강이지만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어릴 때 고모집을 갈 때면 아빠 차를 타고 한강을 드라이브했던 기억이 난다. 뒷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봤다. 아빠는 가끔 라디오의 볼륨을 낮추고 "저기가 한강이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한강은 훨씬 가까웠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강물에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절 아빠의 차는 소나타였고, 에어컨도 잘 안 나왔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달리는 드라이브는 나름대로 시원했다. 강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와 머리카락을 휘날렸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도 그런 순간들을 즐겼던 것 같다. 직장일로 바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을 테니까.
지금 지하철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은 다르다. 거리가 있다. 물리적인 거리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거리도. 하지만 그 거리감이 나쁘지 않다.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때로 더 아름답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전체를 보기 어렵지만,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 전체적인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전동차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타고 있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졸고 있다. 나처럼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길을 다니면서도 창밖의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강은 서울을 관통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사와 함께 흘러간다. 조선시대에도 일제강점기에도 전쟁 중에도 한강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런 연속성이 나에게는 위안이 된다.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의 존재감.
이 뜨거운 여름이 끝나면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한강공원에 갈 예정이다.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넓은 공간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돗자리를 펴고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강을 바라볼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다보던 그 강을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시점이 달라지면 느낌도 달라질 것이다.
지하철 창으로 보는 한강에는 묘한 비현실감이 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공간이지만, 지나가는 전동차에서 바라보면 어딘가 다른 세계의 풍경 같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일상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바라볼 수 있는 풍경.
전동차가 다리를 완전히 건너면,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든다. 업무 메시지를 확인하고, 오늘 할 일들을 정리한다. 한강은 뒤로 사라지고,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은 남는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변하지 않으면서도 늘 변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 우리 아이도 지하철을 타고 이 길을 지날 것이다. 그때 이 아이는 창밖의 한강을 보며 무엇을 생각할까. 아마도 나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괜찮다. 같은 풍경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