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

by 생각의정원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어느 수요일 저녁, 사당의 작은 술집에서 친구를 만났다. 대학 때부터 알던 친구였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며 별다른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 회사 일, 최근에 본 영화. 그런 것들. 헤어지면서 친구가 말했다. "오늘 좋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도 좋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일까.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신다. "요즘 애들은 표현을 잘하더라." 틀린 말은 아니다. SNS에는 좋아한다는 말들이 넘친다.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무게가 있다. 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약속 같은 것이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무언가가 변한다. 관계가 달라진다. 책임이 생긴다.


대학 시절,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던 선배였다. 일주일에 두 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고백은 안 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해야 할까?"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가 맞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믿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혼자 간직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재즈 바에 가면 가끔 생각한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조용히, 절제되게, 필요한 음만 연주한다.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살다 보면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회사에서. 모두가 끊임없이 말한다. SNS에는 매 순간의 감정이 업데이트된다. "오늘 너무 행복해", "이거 진짜 좋아", "최고야". 그런 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그런 말들은 점점 어려워진다.


목요일 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별일 없으시냐고 여쭤봤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다. 전화를 끊기 전에 말씀하셨다. "엄마는 네가 좋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라고만 했다. 나도 좋아한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모르겠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절당할까 봐. 너무 무거울까 봐. 관계가 변할까 봐. 혹은 그 감정이 충분히 강하지 않을까 봐.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도 맞는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거라는 믿음. 좋아한다는 감정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시선으로, 침묵으로도 전달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다.


밤이 깊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보인다. 저 수많은 불빛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잠들까.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까. 좋아한다고. 당신이 좋다고. 그냥 담담하게, 부담 없이.

그때까지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말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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