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창밖을 봤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늘게. 꾸준히. 회색 하늘에서.
한숨이 나왔다. 우산을 챙겨야 했다. 신발이 젖을 것이다. 출근길이 불편할 것이다.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어두운 색으로. 비 오는 날엔 다들 어두운 색을 입는다. 검은색, 회색, 남색. 하늘과 비슷한 색.
우산을 찾았다. 현관 구석에 있었다. 펼쳐봤다. 먼지가 묻어 있었다. 언제 썼던 거지. 한 달 전쯤.
집을 나섰다. 비가 얼굴에 닿았다. 차갑고 축축했다. 우산을 펼쳤다. 빗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톡톡톡.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사람들도 우산을 쓰고 걸었다. 검은색 우산, 회색 우산, 투명 우산. 모두 고개를 숙이고 빨리 걸었다. 빨리 실내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보다. 비가 오면 다들 대중교통을 탄다. 젖은 우산 냄새가 났다. 물 냄새, 천 냄새.
회사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우산을 털었다. 물이 떨어졌다. 바닥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우산에서도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모두 조용했다. 비 오는 날은 다들 말이 없다. 피곤해 보였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창밖을 봤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건물들이 흐릿했다. 안개에 싸인 것처럼.
컴퓨터를 켰다. 일했다. 하지만 집중이 안 됐다. 빗소리가 계속 들렸다.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 또각또각.
점심시간이 됐다. 동료가 물었다. "뭐 먹으러 갈까?"
"귀찮은데. 그냥 배달시키자."
"그래."
비 오는 날은 다들 귀찮아했다. 밖에 나가기, 우산 쓰기, 젖은 바닥 걷기. 모두.
배달 음식을 시켰다. 회의실에서 먹었다. 창밖을 봤다. 비가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왜 이렇게 우울하지." 동료가 말했다.
"그러게."
하지만 나는 우울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오히려 좋았다. 빗소리가. 회색 하늘이. 흐릿한 풍경이.
왜 그런지는 몰랐다.
오후가 됐다. 비가 조금 약해졌다. 가랑비로 바뀌었다.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1층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밖을 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우산을 쓴 사람, 안 쓴 사람. 뛰어가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비에 젖은 거리가 반짝였다. 네온사인이 물웅덩이에 비쳤다. 빨강, 파랑, 노랑. 아름다웠다.
문득 생각났다. 대학생 때.
비 오는 날이면 도서관에 갔었다. 3층 창가 자리. 그곳에 앉아 책을 읽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좋았다. 밖은 비가 오고, 나는 따뜻한 실내에 있고. 안전한 느낌이었다.
가끔 창밖을 봤다. 운동장에 비가 내렸다. 나무들이 젖었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나는 그 안에 없었다. 밖에 있었다. 관찰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편안했다.
지금도 그랬다. 카페 안에서 비를 보는 것. 젖지 않으면서 비를 느끼는 것.
커피를 마셨다. 따뜻했다. 창밖은 차가웠다. 대비가 좋았다.
퇴근 시간이 됐다. 비가 거의 그쳤다. 이슬비만 내렸다.
우산을 펼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비를 맞으며.
차갑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젖었다. 재킷이 젖었다. 괜찮았다.
천천히 걸었다. 평소보다. 주변을 봤다. 비에 젖은 나무들. 물웅덩이. 빗물에 반사된 불빛들.
평소에는 못 봤던 풍경.
집에 도착했다.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몸을 감쌌다. 기분이 좋았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봤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밤비.
소리가 들렸다.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 조용하고 규칙적인.
좋았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울하다고. 불편하다고. 귀찮다고.
맞는 말이다. 비는 불편하다. 우산을 챙겨야 하고, 신발이 젖고, 머리가 엉망이 되고.
하지만 동시에 좋다. 빗소리. 촉촉한 공기. 반짝이는 거리. 창밖을 보는 시간.
비 오는 날은 느리다. 사람들이 조금 느려진다. 바쁜 일상이 조금 멈춘다.
그게 좋다.
햇빛 좋은 날은 활기차다. 에너지가 넘친다.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밖에 나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다르다. 안에 있어도 괜찮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그냥 빗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핑계가 된다. 비가.
"비가 와서 못 나갔어."
"비가 와서 집에 있었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은 허락이다. 쉬어도 되고, 느려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눈을 감았다. 빗소리가 들렸다. 자장가 같았다.
잠이 왔다. 깊은 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비가 그쳐 있었다. 하늘이 맑았다. 햇살이 들어왔다.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괜찮았다. 비는 또 올 것이다. 다음 주쯤, 다음 달쯤.
그때 또 들을 것이다. 빗소리를.
그렇게 우리는 산다.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을 번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