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by 생각의정원

그런 날이 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커피를 마셔도 눈이 떠지지 않는 날. 핸드폰을 켰다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서 다시 내려놓는 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날.


나는 오랫동안 그런 날을 나쁜 날이라고 생각했다.


극복해야 하는 무언가, 떨쳐내야 하는 무언가로 여겼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런 나에게 동기부여 영상을 추천했고, 어딘가에서 읽은 글은 그럴 때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들을 믿으려 했다. 하지만 운동화 끈을 묶으려다가 결국 다시 소파에 눕곤 했다. 그리고 그 패배감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보다 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그냥 하기 싫으면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누워서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하얀 면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것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고요했다. 오랫동안 달려왔던 무언가가 잠깐 멈추는 느낌.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머리는 아직 괜찮다고 말하는데 몸이 이미 지쳐 있는 경우가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어쩌면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멈추게 될 것이라는, 소리 없는 경고.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는 데 꽤 능숙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더 크게 무너졌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잠깐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신다. 창밖을 본다. 오늘 날씨가 어떤지 그제야 알게 된다. 평소엔 출근하면서 대충 감지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날엔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인다. 저 나무가 저기 있었구나. 경비 아저씨가 오늘 파란 점퍼를 입었구나. 하늘이 생각보다 맑구나.


세상은 내가 멈춰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가끔은 서운하고, 가끔은 안심이 된다.


나는 그런 날 보통 아무 계획 없이 동네를 걷는다.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디선가 배운 습관인지, 걸으면서도 자꾸 어딘가를 향해 가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억지로 걸음을 늦춘다. 편의점이 보이면 들어간다. 살 것도 없으면서 냉장 코너 앞에 서서 잠깐 서늘한 공기를 맡는다.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내려놓고, 결국 캔 커피 하나를 사서 나온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의 적은 사실 게으름이 아니다. 자책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남들은 다 잘하고 있는데, 나만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이 파고들기 시작하면, 쉬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니게 된다. 누워 있으면서도 편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서도 불안하다.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리가 계속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청구서를 일단 서랍 안에 넣어두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직 잘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을 온전히 그런 날로 보내고 나면, 다음 날이 약간 다르게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기적처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 발이 가벼워진다. 어제 그 자리에 있던 무거운 것이 조금 줄어든 느낌.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충전이다. 다만 세상이 그것을 낭비처럼 느끼게 만드는 데 너무 능숙해서, 우리는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도록 훈련되어 있다. 나는 그 훈련에 가끔은 저항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를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이 그런 날이라면, 그냥 그런 날로 두면 된다.


커피를 마시고, 창밖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천장을 올려다봐도 된다.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아니면 모레가 다를 것이다. 어쨌든 이 날도 지나간다. 모든 날이 그렇듯이.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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