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나는 늘 그렇듯 출근 준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주며 나는 문득 어제 길에서 스쳐간 사람을 떠올린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지구상에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오늘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몇 명에 불과하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마치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에서 특정한 별빛이 내 눈에 닿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런 만남의 소중함을 간과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 길에서 마주치는 배달원, 공원에서 벤치에 앉은 사람들. 이들과의 만남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며칠 전, 나는 동네를 걸으며 한 젊은 남자를 관찰했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 좋은 기억일 수도, 아픈 추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의 발걸음에는 어딘지 무거움이 있었고, 그 무거움이 나에게도 전해져왔다.
우리는 과연 진짜 만나고 있는 걸까?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치는 사람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서로의 현재를 잠깐 공유하는 일이 아닐까. 그 순간만큼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존재들. 각자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중이지만, 그 찰나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인식한다.
물론 모든 만남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쾌하기도 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타인은 창문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을 엿본다. 아침 일찍 조깅하는 사람을 보며 건강한 생활을 생각해보고, 공원에서 책을 읽는 학생을 보며 배움에 대한 열정을 떠올린다. 반대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최근 들어 사람들이 점점 서로를 피해가는 것 같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차단한다. 물론 그런 것들도 필요하다. 도시의 소음과 혼잡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니까. 하지만 너무 차단하면 우리는 점점 둔해지고,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의식적으로 주변을 관찰한다. 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들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짐작해본다. 때로는 어색하고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나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퇴근하고 만들어둔 커피가 다 식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겨우 한 모금 마실 수 있었다. 나는 컵을 들고 서재로 향했다. 아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는 퇴근길에 지친 걸음을 옮기고, 누군가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있다.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언젠가 나와 길에서 마주칠지도 모르는, 아니면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사랑과 상처를.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때로는 내 이야기와 스치듯 만나 작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삶을 만나는 일이다. 우리 자신의 삶을, 그리고 타인의 삶을.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넓어지고, 조금씩 깊어진다.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 상처마저도 우리를 더 따뜻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와 마주칠 것이다. 길에서, 계단에서, 문득 고개를 든 순간에. 어떤 만남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만남이 어떤 형태든 내 하루에 새로운 색깔을 더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듯,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