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습관

by 생각의정원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는 것들이 있다.


잠들기 전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것. 커피를 마시고 나서 빈 잔을 바로 씻는 것. 신발을 벗으면 반드시 가지런히 놓는 것.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결심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그게 나의 방식이 되어 있었다. 습관이란 그런 식으로 생긴다. 선언 없이, 조용히.


습관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취미나 직업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의 작은 행동들이 더 솔직하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상을 차리는 사람과 대충 서서 먹는 사람. 노트를 쓸 때 줄을 맞추는 사람과 자유롭게 흘려 쓰는 사람. 이메일을 보내기 전 세 번 읽는 사람과 한 번에 보내는 사람.


그 차이들이 모여서 어떤 사람의 윤곽을 만든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윤곽을.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시절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매일 운동하기, 독서 삼십 분. 앱을 깔고 스트릭을 기록했다. 며칠은 잘 됐다. 그러다 하루를 빼먹었고, 빼먹었다는 사실이 부담이 됐고, 그 부담이 싫어서 앱을 삭제했다.


습관을 하나의 성취로 만들어버리면 실패도 생긴다. 그리고 인간은 실패 앞에서 생각보다 쉽게 포기한다.


지금은 기록하지 않는다. 잘 되면 계속하고, 안 되면 다음 날 다시 한다. 연속성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아침 달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쓴다고 했다. 그 규칙성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창의적인 작업에는 오히려 규칙적인 몸이 필요하다고. 영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영감이 찾아올 수 있는 상태를 매일 만들어두는 것이라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습관은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것.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가능한 토양을 매일 조금씩 고르는 것.


나쁜 습관은 끊기 어렵다. 그건 다들 안다.


그런데 왜 어려운지를 생각해보면, 그 습관이 무언가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피로를 잊게 해주거나, 불안을 눌러주거나, 잠깐의 위안이 되거나. 나쁜 습관에도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모른 채 행동만 끊으려고 하면 결국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습관이 채워주던 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채우는 일에 더 가깝다.


가장 좋아하는 습관이 있다.


밤에 잠들기 전 내일 입을 옷을 미리 꺼내두는 것이다. 별것 아닌 일이다. 삼십 초면 끝난다. 그런데 그 삼십 초가 다음 날 아침을 조금 부드럽게 만든다. 졸린 눈으로 옷장 앞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결정 하나가 미리 끝나 있다.


삶이란 결국 이런 작은 것들의 합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결심보다, 매일 삼십 초씩 내일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두는 것.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을 들었다. 뇌의 가소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오래된 습관들이 쌓여서 어떤 안정감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이 흔들려도,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자기 전 내일 옷을 꺼내둔다.


그 작은 동작들이 나를 나이게 하는 것들이다.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단단하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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