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글, 그리고 토요일의 냄새에 대하여

by 생각의정원

글이 늦었다. 이번 주는 그런 주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는 계속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회의록과 기획서와 슬랙 알림들. 화면 속의 숫자들과 마감 날짜들. 그것들이 끝나지 않는 계단처럼 이어졌고, 나는 그 계단을 오르면서도 꼭대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주들은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시작이 있는지도 모른 채 끝이 온다.


그래서 글이 늦었다. 변명이라기보다는, 그냥 사실이다.


토요일 아침, 나는 아이의 발소리에 잠을 깼다.

쿵, 쿵, 쿵. 작은 발이 마룻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알람보다 정확하고, 알람보다 훨씬 거절하기 어렵다. 눈을 뜨니 일곱 시 이십 분이었다. 평일이었다면 이미 한 시간 전에 일어났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이 시간이 늦잠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내가 눈을 뜨자마자 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서였는데, 공룡이 나왔고 그 공룡이 초록색이었고 근데 착한 공룡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그래?" 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그걸로 충분한 듯 만족스럽게 방을 뛰쳐나갔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충분하지 않은 대답들이, 아이의 세계에서는 충분할 때가 있다.


부엌에서 아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를 내리면서 나는 이번 주를 천천히 복기했다.


사실 복기랄 것도 없었다.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일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일의 비율이, 이번 주는 유독 후자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많은 일을 했는데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는 그런 감각. 모래를 손으로 쥐었다가 놓아버린 것 같은.


그런데 커피가 다 내려질 무렵, 아이가 또 달려왔다. 이번엔 책을 들고 있었다. 읽어달라는 것이었다. 공룡 그림책이었다. 아마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책을 받아 들었다.


원두를 두 그람 더 갈았던 것처럼, 커피가 식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룡들의 이름을 틀리게 발음했더니 아이가 진지하게 교정해줬다. 나는 고쳐 읽었다. 아이는 흡족해했다. 그 흡족함이 이상하게 작은 성취처럼 느껴졌다. 이번 주 내내 쫓았던 그 무언가보다 조금 더 손에 잡히는 성취.


오후에는 셋이서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아이는 걸을 때 항상 선을 밟으면 안 된다는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지키고 있어서, 보도블록 사이의 선들을 피해 이상한 보폭으로 걸었다. 그걸 보고 아내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아이는 우리가 왜 웃는지 모르는 채로 진지하게 선을 피했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4월의 서울이 늘 그렇듯이. 꽃잎이 바람에 날려 아이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는 손으로 탁 쳐서 털어냈다. 꽃잎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예쁘게 날아갔는데.


어떤 카페 앞에서 아내가 멈춰 섰다. 들어가자는 말 없이 그냥 멈추는 것, 그게 들어가자는 뜻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면 언어보다 빠른 신호들이 생긴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오늘은 좋았다.


아이는 딸기 라떼를 시켰다. 딸기가 들어갔냐고 두 번이나 확인했다. 들어갔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걸 보면서, 확인이라는 행위의 순수한 형태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해관계가 없는 확인. 그냥 알고 싶어서 하는 확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졸기 시작했다.


아내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나는 아내 옆에서 걸으면서, 이 장면을 어딘가에 저장해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아내가 싫어할 것 같아서, 그냥 눈으로만 찍어뒀다. 인간의 눈이 카메라보다 나쁜 점은 흔들린다는 것이고, 좋은 점도 흔들린다는 것이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나는 다시 커피를 내렸다.


이번엔 조용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도 틀지 않았다. 그냥 커피 내려지는 소리와, 아내가 소파에서 책 넘기는 소리와, 가끔 바람이 창문을 건드리는 소리. 그것들이 나름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걸,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알았다.


이번 주는 바빴다. 그래서 글이 늦었다.


하지만 이 토요일은 늦지 않았다. 제때 왔고, 제 할 일을 다 했다.


아이가 초록 공룡 꿈을 꿨고, 선을 피해 걸었고, 딸기가 들어갔는지 확인했고, 집으로 오는 길에 잠들었다.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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