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이 되던 해 여름에 있었던 나는 옷장 문을 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애플뮤직에서는 Mac DeMarco의 'Chamber of Reflection'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옷들이 빼곡했다. 2년 전에 산 유니클로 셔츠, 한 번도 입지 않은 COS 재킷,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줄무늬 티셔츠 두 장.
왜 이렇게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걸까?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산미가 강한 편이었지만 오늘따라 그게 좋았다.
옷장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옷들은 거기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첫 번째로 꺼낸 것은 블렉 블레이저였다. 2019년 겨울에 샀다. 면접이나 직장 생활에 때 입으려고. 결국 그 회사는 떨어졌고, 블레이저는 다시 입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 입을 것 같아서. 그 '언젠가'는 4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검은 티셔츠가 일곱 장이었다. 왜 일곱 장이나 필요했을까? 아마 각각 다른 시기의 내가 '이번엔 정말 필요해'라고 생각하며 샀을 것이다. 스물여덟 살의 나, 스물아홉 살의 나, 서른 살의 나. 그들은 모두 검은 티셔츠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가 닫았다. 누군가 미니멀 라이프 사진을 올렸을 것 같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은 미니멀과는 거리가 멀었다. 맥시멀도 아니었다. 그냥 어중간했다.
두 번째 커피를 내렸다. 이번엔 콜롬비아. 초콜릿 향이 났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당신과 함께 입었던 옷들'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봤다. 머릿속에서만. 데이트 때 입었던 흰 셔츠, 같이 여행 갔을 때 입었던 린넨 바지, 힘들었던 날 입었던 회색 후드티. 이 옷들은 버릴 수 없었다.
추억이 묻어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옷은 그냥 옷일 뿐인데.
세 시간이 지났다. 옷을 세 무더기로 나눴다. 버릴 것, 기부할 것, 남길 것. 남길 것이 제일 많았다. 실패했다.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마리 콘도 방식 말고, 그냥 내 방식으로. 1년 이상 안 입은 건 무조건 아웃. 예외 없이. 감정 없이. 마치 엑셀 시트에서 필터링하듯이.
효과가 있었다. 옷장의 60%가 비었다. 텅 빈 공간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누군가는 공허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능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쌓아두고 사는 걸까? 옷만이 아니다. 관계도, 감정도, 해야 할 일들도. 모두 켜켜이 쌓여서 우리를 무겁게 만든다.
다음 날 아침, 남은 옷들만 입어봤다. 충분했다. 아니, 사실 아직도 많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어제보다 조금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9월의 비. 옷장에서 우산을 찾았다. 우산은 두 개만 있었다. 딱 좋았다. 하나는 쓰고, 하나는 잃어버릴 용도로.
그렇게 나는 서른두 살의 봄을 조금 더 가볍게 시작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옷을 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변하는 것 같다. 아주 작게,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