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나는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한다. 오늘도 또 시작이구나. 커피를 내리고, 씻고, 적당히 색상을 맞춰 옷을 입는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의식처럼 반복된다. 직장인이라는 것은 결국 이런 작은 의식들의 연속이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 세 개의 서로 다른 우주를 떠돌았다. 스타트업이라는 혼돈의 우주, 중견기업이라는 안정의 우주, 그리고 대기업이라는 질서의 우주. 각각의 우주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었다.
스타트업은 재즈 같았다. 즉흥연주가 중요하고, 실수해도 괜찮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곡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사무실에는 항상 피자 냄새가 났고, 누군가는 새벽 3시까지 남아서 코딩을 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 CEO가 갑자기 내 자리로 와서 묻곤 했다. 그는 항상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스니커즈 소리를 내며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위계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미쳤고, 동등하게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에는 대가가 따랐다. 월급날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묘하게 긴장했다. 회사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때마다 우리는 농담으로 불안을 감추곤 했다. "이번 달도 라면으로 버텨보자." 웃으면서 말했지만, 속으로는 모두 조금씩 걱정하고 있었다.
중견기업으로 옮긴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더 이상 불확실성을 감당할 수 없었고, 조금 더 안정적인 곳에서 숨을 고르고 싶었다. 그곳은 클래식 음악 같았다. 정해진 악보가 있고, 지휘자가 있고, 각자의 파트가 명확했다.
처음 한 달 동안 나는 매뉴얼을 읽었다. 두꺼운 종이뭉치였지만, 그 안에는 지난 10년간 쌓인 노하우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스타트업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했지만, 여기서는 이미 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은 정확히 12시부터 1시까지였다. 사람들은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서 밥을 먹었고, 대화 주제는 대부분 안전했다. 날씨, 드라마, 주말 계획. 아무도 회사를 뒤흔들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편안했다.
대기업은 오케스트라였다. 10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음을 내는 곳. 내가 맡은 파트는 작았지만, 그 작은 파트가 없으면 전체 연주가 어색해지는 그런 곳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항상 정장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층수 버튼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구두 끝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어느새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회의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열렸다. 안건도 미리 정해져 있었고, 회의록을 쓰는 사람도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다. 그것이 때로는 답답했지만, 또 때로는 안심이 되었다.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작은 개선안 하나를 통과시키는 데에도 수많은 단계와 승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그것은 견고하고 지속적이었다.
각각의 우주에서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스타트업에서는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슈퍼맨이었고, 중견기업에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키워가는 장인이었고, 대기업에서는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의 톱니였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스타트업의 자유로움이 그리웠고, 때로는 대기업의 안정감이 필요했다. 중견기업의 적당함이 딱 맞을 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경험이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에서는 빠른 실행력을, 중견기업에서는 체계적 사고를, 대기업에서는 인내심을 배웠다.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계속 한 곳에만 있었다면 어떨까? 스타트업의 혼돈 속에서 평생을 보냈다면, 대기업의 안정 속에서만 살았다면. 아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직장 생활이란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안정을 택할 것인가, 도전을 택할 것인가. 체계를 따를 것인가, 혁신을 추구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본다.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스타트업이 문을 열고 있을 것이고, 어딘가에서는 오래된 대기업이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여전히 떠돌고 있다.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이 경험에서 저 경험으로. 어쩌면 그것이 직장 생활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불완전한 곳에서 완전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모든 직장은 나름의 우주다. 중요한 것은 그 우주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