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열 시, 나는 물을 끓인다.
평일 아침엔 할 수 없는 시간이다.
평일의 여섯시 반은 전쟁이다.
애기 밥을 물리고, 알람을 끄고, 씻고, 옷을 입고, 와이프를 깨우고,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정확히 35분.
커피는 전문점 산다. 2,000원~4,000원 짜리 아메리카노.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냥 그런 커피.
하지만 주말 아침 열 시는 다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라인더 소리가 거실에 울려도, 물 끓는 소리가 부엌을 채워도 괜찮다.
천천히 원두를 고르고, 천천히 물을 끓이고, 천천히 드리퍼를 준비한다.
일주일 중 이 시간만큼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게 좋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내릴 때는 92도, 그라인더는 중세분쇄로 15클릭. 콜롬비아 수프리모는 88도에 중세분쇄 18클릭. 케냐 AA는 94도, 그라인더를 13클릭까지 올린다. 브라질 산토스는 90도에 20클릭, 시간은 3분 30초.
매번 다르다. 같은 방법으로 내려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는 커피일 뿐인데,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지. 하지만 어느 주말 아침, 전날과 똑같은 온도와 시간으로 내린 커피가 전혀 다른 맛이 났다. 같은 원두였는데도.
그때 깨달았다. 원두가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달랐던 거다.
피곤한 아침에는 깊은 맛의 브라질을 찾게 된다. 90도의 물로 천천히, 3분 30초를 들여 내린다. 그라인더를 20클릭으로 설정하고, 굵게 간 원두에 물이 천천히 스며들도록 둔다. 진하고 묵직한 맛.
그게 그날 아침의 나를 깨운다.
어떤 주말 아침은 가볍다. 그럴 때는 에티오피아를 꺼낸다. 92도, 15클릭, 2분 30초. 밝고 산뜻한 산미가 입안에 퍼진다. 마치 아침 햇살 같은 커피.
비 오는 주말에는 케냐를 내린다. 94도의 뜨거운 물, 13클릭의 곱게 간 원두, 정확히 2분 45초. 강렬한 향과 깊은 바디감. 창밖의 빗소리와 어울리는 무게감.
같은 원두라도 내 상태에 따라 그라인더 세팅을 바꾼다. 예민한 날은 굵게 갈아서 부드럽게, 둔감한 날은 곱게 갈아서 강렬하게. 물 온도도 마찬가지다. 차분한 아침에는 낮은 온도로, 활기가 필요한 아침에는 높은 온도로.
사람들은 묻는다. 그럴 필요가 있냐고. 그냥 커피머신에 캡슐 하나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오늘의 나를 살피는 시간. 어떤 기분인지, 어떤 맛이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 그라인더 다이얼을 돌리고, 온도계를 들여다보고, 타이머를 누르는 이 조용한 의식이 좋다.
어쩌면 커피를 내린다는 건, 나 자신을 조율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원두마다 최적의 조건이 다르듯, 날마다 내게 필요한 것도 다르다. 어제의 레시피가 오늘은 맞지 않을 수 있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맞는 한 잔을 찾아가는 것.
주말 아침, 나는 오늘의 원두를 꺼낸다. 그라인더를 몇 클릭으로 맞을지, 물을 몇 도까지 끓일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어떤 커피가 필요할까.
앞으로 나도 틀릴 수는 있지만, 커피에 대해 배운 것들을 조금씩 써보려 한다. 완벽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92도가 맞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88도가 맞을 테니까.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나만의 레시피들을, 주말 아침의 작은 발견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커피 한 잔이 식기 전에, 나는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