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

by 생각의정원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언제나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흥분해서가 아니다. 단지 어떤 기묘한 긴장감 같은 것이 몸 안을 맴돈다. 마치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가방은 이미 쌌다. 별것 없다. 옷 몇 벌, 칫솔, 책 한 권.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점점 짐이 줄어든다고 했다.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텅 빈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자고 있다. 그들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온다.


탑승권을 받아 드는 순간의 가벼운 설렘. 그것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통행증이다. 익숙한 세계와 낯선 세계 사이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허가증.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몸이 뒤로 밀리는 그 감각.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미세한 공포와 해방감. 창밖으로 도시가 점점 작아진다. 내가 살던 곳, 내가 알던 거리들이 장난감처럼 작아진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은 이렇게 넓구나.


구름 위로 올라가면 언제나 맑다. 아래가 아무리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구름 위는 언제나 햇빛이 쏟아진다. 이상한 위안이다.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낯선 땅에 도착한다.


공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 냄새가 다르고, 습도가 다르고, 빛의 질감이 다르다. 표지판의 글자가 다르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르고, 들리는 언어가 다르다. 모든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 좋다.


나는 지도를 펼친다. 혹은 스마트폰 화면을 켠다.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한다. 작은 점 하나. 나는 이 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어느 거리가 아름답고, 어느 골목이 위험하고,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때로 아름답다.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사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낯선 곳을 걷는다는 것, 내가 모르는 거리를 걷는다는 것. 길을 잃어도 괜찮다. 오히려 길을 잃는 편이 더 재미있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들.


작은 카페를 발견한다. 들어간다. 메뉴를 읽을 수 없다. 손짓발짓으로 커피를 주문한다. 나온 커피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창가에 앉아 거리를 본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들에게 이곳은 일상이다. 출근길이고, 장 보러 가는 길이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은 신비다.


해가 기운다. 처음 와본 도시의 석양은 묘하다. 똑같은 해인데 다르게 보인다. 건물들이 만드는 그림자의 각도, 골목에 스며드는 빛의 색깔, 모든 것이 낯설고 아름답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생각한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일까. 새로운 것을 보는 일? 그것도 맞다. 하지만 어쩌면 여행은 익숙한 나 자신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상의 자동화된 패턴에서 빠져나와, 다시 한 번 세계를 신선한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


낯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낯선 소리들이 들린다. 낯선 바람이 창틀을 흔든다.


나는 웃는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일까.


알 수 없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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