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나는 끓는 물을 만든다.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스위치를 누르고, 그 소리를 듣는다. 보글보글거리다가 어느 순간 끓어올라 증기가 피어난다. 별로 주목할 일 같지 않지만, 나는 이 과정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한다.
물이 끓는 데는 정확한 온도가 필요하다. 섭씨 100도. 그보다 낮으면 완전히 끓지 않은 것이고, 그보다 높을 수는 없다. 물은 자신의 한계를 매우 정직하게 표현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것이 물이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상태와 조건 속에서 정확히 그만큼만 변한다.
나는 이것이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온도에서 끓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그 순간을 지나 증기가 되어 사라지는 중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자신이 정확히 어느 온도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제 내 친구가 전화를 했다.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얘기하고 싶었단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창밖을 봤다. 가을 햇빛이 거리의 자동판매기에 반사되고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최근에 많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에게 물이 끓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웃었다. 그것이 최고의 반응이었다.
끓는 물은 조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를 낸다. 에너지를 표현한다. 때로는 뜨거운 물이 튀어서 팔에 닿기도 한다. 하지만 물은 자신의 소명을 다한다. 그것은 차를 만들고, 면을 삶고, 누군가의 목을 축여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이것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본다. 혼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온도를 정확히 아는 것과 비슷하다. 주변의 불을 느끼고, 자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
오늘 아침도 나는 끓는 물을 만들 것이다. 내일 아침도, 그 다음 아침도. 이런 작은 반복이 결국 우리를 이루는 것 같다. 거대한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매일의 정확한 온도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혹시 누군가 이 말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어느 온도쯤일까? 이미 끓고 있나, 아직 준비 중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물은 항상 정직하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