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나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정확히 센 건 아니고, 그냥 대충. 옷장을 열면 2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들이 있었다. 서랍을 열면 뭔지도 모르는 케이블들이 엉켜 있었다. 책장에는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이것들은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처음엔 "언젠가 쓸 수도 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그 옷도 입을 날이 올 거고, 그 케이블도 필요할 거고, 그 책도 다시 펼칠 거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없었다. 있는 건 오늘뿐이었다.
그래서 버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조금씩. 먼저 확실한 것부터. 고장 난 이어폰, 펜이 나오지 않는 볼펜, 구멍 난 양말. 이건 쉬웠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직 쓸 만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
2년 전에 산 재킷이 있었다. 한 번도 안 입었다. 입을 때마다 뭔가 어색했다.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거나, 핏이 이상했거나. 하지만 비쌌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었다. 옷장에 걸어두고, 가끔 쳐다보고, "다음에는 입어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그 재킷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재킷이 옷장에 있는 한, 나는 계속 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고. 그게 더 아까운 일 아닐까.
버리고 나니 옷장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 입는 옷들만 남았다. 아침에 옷을 고를 때 망설이는 시간이 줄었다. 어차피 입을 옷은 정해져 있으니까.
책도 버렸다. 이건 더 어려웠다. 책은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하지만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인가. 대부분의 답은 아니오였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 재미없었던 책들, 충동적으로 산 책들. 이것들은 책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걸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단어가 싫다. 왠지 트렌디하고, 멋져 보이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법한. 하지만 내가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냥 필요 없는 걸 버리는 것뿐이다. 복잡한 게 싫어서.
서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게 있다. 물건이 많을수록 관리해야 할 게 많아진다는 것. 옷이 많으면 빨래가 많아지고, 책이 많으면 먼지를 닦아야 하고, 물건이 많으면 정리할 게 많아진다. 그게 다 시간이고, 에너지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면 안 될까. 아내와 커피를 마시거나, 아기와 놀거나, 그냥 창밖을 보거나. 물건을 관리하는 대신.
주방도 정리했다. 냄비, 프라이팬, 그릇, 컵. 사실 우리가 쓰는 건 몇 개 안 된다. 나머지는 장롱 속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선물 받은 접시 세트, 한 번 써보고 불편해서 안 쓰는 조리 도구들. 이것들도 버렸다.
처음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물해준 사람한테.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사람도 내가 이걸 안 쓰고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그리고 설사 안다 해도, 쓰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간직하는 게 더 예의 없는 일 아닐까.
버리는 일은 중독성이 있다. 한 가지를 버리면, 다른 것도 버리고 싶어진다. 옷을 버리고 나니 신발도 버리고 싶어졌고, 책을 버리고 나니 잡지들도 버리고 싶어졌다. 쓰레기봉투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아내는 처음엔 걱정했다. "그거 나중에 필요하면 어떡해?" 하지만 나중에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하면 다시 사면 된다. 필요하지 않은데 간직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 다시 사는 게 낫다.
지금 우리 집은 예전보다 훨씬 비어 있다. 옷장도, 책장도, 주방도. 하지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편하다. 찾는 게 쉬워졌고, 정리하는 시간이 줄었고, 뭔가 숨 쉴 공간이 생긴 것 같다.
가끔 버린 걸 후회할 때도 있다. 그 티셔츠, 그 책, 그 컵. 하지만 그런 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게 정말 필요했던 게 아니라, 그냥 익숙했던 것뿐이라는 걸.
물건을 버리면서 배운 게 있다. 소유하는 것도 부담이라는 것. 물건이 많다고 풍요로운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적을수록 자유롭다는 것.
나는 계속 버릴 것이다. 안 쓰는 건 전부. 필요한 것만 남기고.
미니멀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지만, 행동은 계속할 것이다. 복잡한 게 싫으니까. 단순한 게 좋으니까.
오늘도 서랍을 열어본다. 또 버릴 게 있을까. 있다. 항상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 필요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