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 반. 예전 같았으면 벌써 산 입구에 도착해 있을 시간이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배낭을 메고, 첫 번째 능선을 향해 걷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다. 옆에서 아내가 잠든 숨소리가 들리고, 아기 방에서는 작은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곧 깰 것이다.
20대와 30대 초반, 나는 거의 2주에 한 번씩 산에 갔다. 북한산, 설악산, 지리산, 계룡산. 주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등산 가방을 챙겼다. 가벼운 등산도 좋았고, 하루 종일 걸려 정상까지 오르는 높은 산도 좋았다. 몇 달에 한 번씩은 백팩킹을 갔다. 텐트와 침낭을 메고 산 위에서 밤을 보내는 것.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라면을 끓여 먹고, 새벽 안개 속을 걷는 것. 그게 내 삶의 리듬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언젠가 끝날 거라는 걸. 아니, 끝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변한다는 게 맞겠다. 삶이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
아기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갔다. 아기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탔다. 아내가 일어났다. "몇 신지?" 그녀가 물었다. "여덟시 반쯤." "오늘 뭐 할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냥 집에 있을까. 아니면 근처 공원?"
예전의 나였다면 이미 산에 가 있었을 것이다. 토요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차를 몰고, 산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리고 올라갔을 것이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고, 땀이 흐르는 그 과정이 좋았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도 좋았지만, 사실 더 좋았던 건 그 과정이었다. 걷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발을 옮기고, 숨을 쉬고, 앞만 보면 됐다.
백팩킹은 또 달랐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산 위에서 보낸 밤은 특별했다. 텐트 안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책을 읽거나, 밖에 나가 별을 보거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텐트를 나서면, 세상이 아직 깨어나기 전이었다.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새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가스버너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다. 그게 내가 아는 최고의 아침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리워진다. 산의 공기, 흙 냄새, 능선을 따라 부는 바람. 정상에서 내려다보던 풍경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리워하면서도 굳이 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주말에 몇 시간 정도는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몇 시간을 산에 쓰고 싶지 않다.
아내와 아기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는 것,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지켜보는 것, 아내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여러 대화를 나누는 것. 이런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메는 대신, 맨발로 거실을 걷는 것. 산 정상 대신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하늘. 백팩킹 텐트 대신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아기 매트.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네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거라고. 체력이 떨어져서, 의욕이 사라져서.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게 된 것이다.
가끔 예전 사진들을 본다. 정상 표지판 앞에서 찍은 사진들, 백팩킹 텐트 옆에서 찍은 사진들. 그 사진 속의 나는 젊어 보인다. 웃고 있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때는 정말 자유로웠다. 가고 싶으면 가고, 오래 있고 싶으면 오래 있었다. 누구한테도 미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자유는 다르다. 아내와 아기가 있는 이 거실, 이 주말 오전이 나의 자유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산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괜찮은 자유.
물론 다시 갈 것이다. 언젠가는. 아기가 조금 더 크면, 아내와 함께 가벼운 산을 오를 수도 있다. 그때는 또 다른 방식의 등산이 될 것이다. 천천히, 자주 쉬면서, 아기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 신기해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처럼 2주에 한 번씩, 새벽같이 일어나 높은 산을 오르고, 백팩을 메고 능선을 걷던 그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슬프지는 않다. 그저 다른 계절로 접어든 것뿐이다.
거실에서 아기가 웃는다. 아내가 까꿍 놀이를 해주고 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내린다. 산에서 마시던 커피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창문 밖으로 맑은 하늘이 보인다. 등산하기 좋은 날씨다. 하지만 나는 등산화 대신 슬리퍼를 신고, 배낭 대신 아기 가방을 꺼낸다.
오늘은 산에 가지 않는 주말이다.
내가 선택한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