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

by 생각의정원

진주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터널에 들어섰다.


터널 안은 언제나 같다. 주황색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고, 타이어 소리가 바닥에 울린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


나는 핸들을 쥐고 생각했다. 터널이라는 것은 이상한 공간이다. 입구와 출구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 지대. 우리는 그 안에서 잠시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터널 안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현재만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


진주에서의 일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났고,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어떤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터널 안에서 그 기억들은 이미 저 뒤편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집도 아직은 현실이 아니었다.


터널은 길다. 몇 분이나 되는 걸까. 시간을 재본 적은 없지만,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 침착해진다. 밖에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한다.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우리는 항상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어제에서 내일로. 하지만 정작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언제나 이 순간, 이 터널 안이다.


주황색 조명이 계속 지나간다. 하나, 둘, 셋. 나는 세어본다. 그러다 멈춘다. 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끔 터널 안에서 다른 차들을 본다. 나처럼 누군가도 이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그들도 어딘가에서 왔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왔고,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한다.


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아무리 예상하고 있어도, 빛은 항상 예고 없이 쏟아진다. 눈이 부시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그리고 세상이 다시 나타난다.


하늘이 있고, 산이 있고, 구름이 있다. 터널 안에서는 없던 것들이 갑자기 존재한다. 마치 다른 세계로 건너온 것 같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 힘든 시간들도 터널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고. 그 안에 있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하지만 모든 터널에는 출구가 있다. 그것이 터널의 정의다. 출구가 없다면 그것은 터널이 아니라 감옥이다.

물론 터널을 빠져나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밖으로 나가도 여전히 길은 계속된다. 또 다른 터널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잠시는, 빛 속을 달릴 수 있다.


진주에서의 일들이 이제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그 기억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동시에 앞으로 도착할 집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계속 이어졌다. 차는 달렸다. 나는 핸들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중요한 것은 터널 안에서도, 밖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의 그 빛을 기억하는 것.


저 앞에 또 다른 터널이 보인다. 나는 속도를 유지한 채 그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어둠이 나를 감싼다. 주황색 조명이 반복된다.


괜찮다. 이 터널에도 출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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