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억'이다. 주인공 소년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겪는 모험 속에서 오래전 돌아가신 증조부 모의 오해와 갈등을 해결하고 또 동시에 그들을 오래오래 기억함으로써 저승에서도 영혼으로서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매듭짓는 따뜻한 영화다.
재미있는 부분은 애초에 멕시코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축제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영화 007 시리즈의 어느 작품에서 배경이 멕시코가 되었고 각종 퍼레이드를 연출한 설정으로 인해 결국 멕시코가 우리도 축제 하나 만들자고 해서 탄생을 했단다. 기가 막힌 우연. 그리고 그것을 인연으로 이어가는 많은 이들의 노력. 삶과 죽음의 경계에 기억을 가져다 쓴 <코코>의 설정은 그래서 더 드라마틱 하다.
어릴 적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엄마는 늘 아침마다 200원을 내게 주셨고, 나는 그중 100원을 은행에 저금하고 100원으로 군것질을 했다. 4학년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큰이모에게 심부름을 다녀올 일이 생겼다. 우리 집과는 비교도 안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2층 양옥집과 높은 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큰이모는 커다란 대문이 아닌, 담벼락 끝에 달린 아주 작은 문으로 나를 반기셨다. 허겁지겁 서두르셨고,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봉지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큰이모는 내 손에 500원짜리 동전을 쥐어주셨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500원을 한꺼번에 용돈으로 받아본 적 없던 나는 몹시 놀랐고 또 기뻤다. 큰집에 살아서 돈도 많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집으로 심부름을 자주 가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거의 갈 수 없었다. 10대 중반에 입주 가사도우미로 그 집에 들어간 큰이모는 거의 평생을 그 집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큰이모의 손님이 오는 걸 그 집 어르신이 몹시 싫어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제야 그날 큰이모의 서두름이 이해됐다. 받아온 500원을 한동안 품에 쥐고 쓰지 않았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그 돈을 더 작은 돈으로 바꾸는 일은 당시 내게 큰 불행이었다. 결국 며칠 뒤 엄마가 주신 200원에서 100원을 떼어내 600원을 함께 저금하는 것으로 동전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몇 년 간격으로 큰이모를 잠깐 만났다. 그 와중에 가장 길게 그리고 최근에 만난 것은 내 나이 20대 중반, 당신이 돌아가시기 20년 전이었다. 우린 큰이모의 네 자매를 모시고 남산 인근으로 당일치기 소풍을 다녀왔다. 서툴렀지만 사진도 정성껏 찍어드렸다. 훗날 그 사진은 큰이모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오목조목 기억할 만한 추억도 없다. 엄청나게 컸던 집과 500원짜리 동전 그리고 남산 소풍이 전부였다. 기억에 오류가 없다면 큰이모의 채취와 식습관 그리고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것은 내 엄마와 몹시 닮았었다. 큰이모 입관 때, 내 평생 엄마가 그렇게 펑펑 우는 모습은 처음 봤었다.
큰이모를 보내드리고 아직 한 달도 안 된 시점. 자잘한 뒷정리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틈틈이 그녀를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고, 또한 앞으로도 잊지 않기 위해 나만의 작은 장치들을 곳곳에 설치해두고 있다. 그렇게 나만의 코코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