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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Jun 14. 2024

[독서일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ㅣ 리사 펠드먼 배럿 ㅣ 생각연구소

그 옛날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2"를 하다가 아쉽게 졌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한다거나 욕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다. 커다란 기계 맞은편에 나를 이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빠진 학생의 마음은 하루에도 스무 번 넘게 롤러코스터를 탄다.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의 마음 또한 사춘기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청혼에 성공한 사람의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주체가 안된다. 지난주까지도 함께 어울린 지인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그야말로 머릿속이 삭제된듯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감정이란 무엇일까?'


영화 <월E>에서 쓰레기를 모으는 로봇은 인간이 남겨놓은 비디오를 보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학습한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라 감정 역시 어릴 적부터 동화책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과 학교의 교육을 통해 성립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본능에 기인한 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감정으로 단단해지는 시간에는 분명 사회적인 요인도 들어가 있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북한군의 총 앞에 부락 사람들은 그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총으로 시작되는 고통 또는 사망에 이르는 공포의 학습이 없는 그들에게 총은 그저 아무 가치 없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나마 부락에서 가장 가방끈 긴 사람만 두려움에 벌벌 떠는 이 대조적인 장면은, 앞서 언급한 사랑뿐만 아니라 공포 또한 학습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되는 것에 기인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너무 예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 그 감정들은 정말 무엇일까? 지극히 단순하고 또 어쩌면 굳이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이 질문은 좋아하는 과학자가 추천해 준 책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봤다. 저자는 이렇게나 두꺼운 책에 허투루 버릴 문장 하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아서 술술 읽어지는 과정이 참으로 달콤했다. 다큐멘터리로 시작했으나 롤러코스터를 몇 번 반복해서 탑승한 기분이 들었다.


감정은 학습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유년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를 통해서도 감정은 길들여진다. 맛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콜라의 역할은 분명 다르게 작용한다. 또한 과거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감정은 규격화되고 일반화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감정의 표출을 배우고 그것을 예의라는 이름 아래 학습한다. 아무리 웃긴 생각이 들어도 장례식장에서는 웃음을 참고, 그보다 앞서 장례식장에서는 아무리 웃긴 생각조차 시작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다.



관련해서 재미있는 것은 법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판사도 사람이기에 이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와, 같은 형태의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가해자가 남자 또는 여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동물들에게도 감정은 존재한다. 말 못 하는 동물이라 해서 감정이 없다고 믿는 건 정말 큰 오류가 맞다. 특히 개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과 교감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면도 보인다. 짐작하고 예상했던 것들이 책을 통해 증명되는 순간의 놀라움은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쾌감 중 하나다.


그림이 한 점 있다고 하자. 그림 속 여인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무표정하지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만 같다. 같은 그림이지만 미혼시절, 결혼 후, 자녀를 낳은 뒤, 그리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 볼 때의 느낌은 또 다르게 드러날 것이다. 자녀의 탄생 혹은 부모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 직후 그림을 마주하면 캔버스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여인의 감정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아멜리에>는 훗날 새로운 인류에게 사랑의 정의를 설명해 줄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가 슬픔이의 역할을 깨달았듯 우리의 삶에선 다양한 감정이 늘 어우러져야 한다.

'감정이 무엇이냐'를 떠나 '스스로의 감정'을 잘 관리하고 운영해나갈 여유가 필요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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