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잭 슈렉 Jul 10. 2024

[독서일기] 펼친 면의 대화 ㅣ 전가경 ㅣ 아트북스

펼친 면의 대화 : 지금, 한국의 북 디자이너 ㅣ 전가경 ㅣ 아트북스

인류가 만든 최고의 전자기기는 세탁기라 생각된다. 스마트폰은 잠시 뒤에서 기다려! 단순한 도구로는 바퀴가 있을 수 있겠고. 물건이라 칭할 수 없겠으나 물건 쪽에 가깝다면 그것은 바로 '책'일 것이다. 정보를 기록하고 학문과 역사를 보존하며 세월의 흐름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반영구적인 연속성을 지닌 책. 그 가치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과거보다 편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지은지 30년도 훨씬 넘은 낡은 개량한옥, 부엌 위에 있던 좁은 다락방엔 흐릿한 활자로 인쇄된 계몽사에서 만든 동화 전집이 있었다. 그림은 열몇 장에 하나씩 나올까 말까 했고 그나마 그림 또한 흑백도 아닌 가느다란 펜으로 그린 삽화 수준이었다. 읽을 것이라곤 오직 그뿐이었다. 어릴 적엔 병적으로 책을 좋아했으나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술 마시고 노래하면서부터는 책을 멀리했다.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그야말로 책과 담을 쌓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책 대신 내 흥미를 이끈 것은 바로 잡지였다. 음악잡지 영화잡지 인테리어 잡지 오디오 잡지 미술잡지 건축잡지 여성 잡지까지! 가난한 주머니라 헌책방에서 몰아 읽고 과월 호만 수집하곤 했지만 그래도 잡지가 주는 매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던 중 록 전문 잡지 디자인 일을 3년 남짓. 창간부터 편집장 그리고 인력 부족으로 디자인까지 2년 가까이. 커피랑 같은 이름의 남성잡지에도 잠깐 몸을 담았고 기타 등등


잡지를 만드는 일은 마약과도 같았다. 일간지나 주간지였다면 그 생리를 견디지 못했을 것만 같다. 반면, 한 달 30일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정교한 톱니바퀴와도 같은 일정은 몰입과 휴식, 집중과 허탈, 성취감과 박탈감을 번갈아며 느끼게 해주었다. 늘 허겁지겁 쫓기듯 작업해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 종이에 인쇄되어 서점에 촤르르르 깔린 모습을 보면 그 뿌듯함이란 우주를 뚫고 나갈 기세 못지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면서 다시 책을 손에 쥐었다. 집 앞 도서관. 출퇴근길 지하철. 10년 남짓 천 권을 읽고, 올해 13년 차에 접어든 책과 함께하는 여유 시간. 그 와중에 접한 이 책은 북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현업 10년 이상 경력을 지닌 작가 11명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저자의 심도 있는 관찰력 덕분에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그야말로 황홀할 정도로 다채롭고 서로 다른 멜로디를 연주한다. 또한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본 책의 판형과 비교하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각 꼭지별 후반부의 정성은 등장하는 모든 책을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유혹의 손짓으로 독자를 이끌기도 한다. 


낡은 시스템은 20세기와 함께 사라졌고,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셋업 된 21세기의 북 디자인. 휘황찬란한 아트 비주얼과 단순하지만 정확한 비율과 제안이 담긴 표지들. 그리고 늘 새롭게 탄생하는 예쁜 글꼴. 그 와중에 스테디셀러 마냥 수십 년을 이어온 우리 눈에 익숙한 활자들. 출판사별 특색. 작가의 주관.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와 각종 종이 재질 그리고 인쇄 후 직업과의 협업은 어쩌면 한 편의 영화 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확장된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한 권의 책에는 저자의 고집, 출판사의 능력, 북디자이너의 센스까지 융합되어 지금 당신 손에 혹은 서점의 진열대와 도서관의 서가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다. 지면이 갖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제약. 종이가 갖는 인쇄의 한계. 결국은 활자와 이미지로의 2중주 공연 밖에 될 수 없지만, 그 이면에 깔린 쉽게 들리지 않지만 귀를 쫑긋 세우면 들릴 여러 테크닉들 설치들 북디자이너의 고민들이 숨겨져 있다. 


그래픽 툴이나 인쇄에 관련된 지식이 전무하다면 매끄럽게 읽혀 나가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북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포트폴리오와 함께 엮어낸 책은 자주 접할 수 없는 장점을 눈여겨본다면 한 번은 정독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늘 쓰는 표현이지만, 저자와 함께 차 한잔하는 느낌으로... 게다가 이 책엔 11명의 초대 손님이 더 있다. 커피값 많이 들 수 있으니 이번 달 용돈은 아껴 써야지.


<책 자세히 보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078726 

작가의 이전글 인사이드 아웃2 : 삶은 고통의 연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