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첫 직장과 그다음 직장을 거쳐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점에 퇴사를 맞아 아무 계획도 비전도 준비도 없이 대뜸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리곤 꼬박 7년을 버텼다. 배고픈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즐거운 시간도 있었고 돈이 넘쳐나던 순간도 잠깐 경험했다. 당시 만들었던 명함에 나를 표현하길 수줍게도 '스타일리스트'라 했다. 패션 쪽 용어가 맞을 수도 있겠으나 모든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뜻으로 역시 아무 계획도 비전도 준비도 없이 만든 명함이었다.
30대의 두 여성 작업자가 쓴 이 책은 말 그대로 '사전'이다. 딱딱한 국어사전도 아니고, 너무 어려운 영어 사전도 아니며, 이젠 활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은 옥편도 아닌 '작업자의 사전'이다. 고군분투하는 그리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두 작업자의 이야기는 제법 귀감이 되기도 하며 귀차니즘에 젖은 구석도 있고, 시시콜콜하게 책장을 넘기기 좋다.
같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관찰자의 여러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책은 증명한다. 어쩌면 단 한 줄로도 설명하기 힘든 무수히 많은 단어들을 작업자들은 꼼꼼하게도 해답을 적었다. 동감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그것은 이미 시대가 바뀌고 '세대 차이'라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느낌이기에 투정 부리지 않겠다.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한 교외 활동 이벤트 참가를 못한 지난날의 아쉬움은 누굴 탓할까.
그만큼 빠른 속도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를 이 책을 통해 경험했다. 무엇보다 여러 단어와 현상에 대한 다채로운 표현과 설명은 2024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세련되고 또 유머러스하며 재기발랄한 문체로 꾸며진다. 마치 글자들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 평온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신선하고 파릇파릇한 느낌의 자극을 받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더불어 빠르게 바뀌는 시대를 들여다보니 2000년이 막 시작하면서 명함을 팠던 그 시절의 땀방울이 떠올랐다. 변변치 않은 작업실이 없어 한 다리 건너 지인의 충무로 사무실에서 올빼미처럼 밤 시간에만 작업도 했다. 한여름 태풍이 몰아쳐 아끼고 아껴 꾸린 작업실에 비가 들이쳐 컴퓨터 본체며 갓 만든 CD며 책상 위로 올려 한 장씩 걸레로 닦아가며 펑펑 울기도 했다. 뭐 늘어놓자면 밤새야지. 뚝!
열정페이를 반대한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우다. 하지만 그 단어 안에 담긴 '열정'은 필요하다. 때문에 어쩌면 열정페이는 반대하지만, 배고파도 굶어도 너무 좋은 건 내가 하고 싶은 건 얼마든지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고루한 속담을 나는 아직도 (솔직히) 사랑한다.
이 책은 그 '젊어 고생'에 대한 사례와 격언을 다룬 소중한 보석과도 같다. 충분하다.
<책 자세히 보기>